'메이드 인 코리아' 설자리 없다 백화점엔 해외 명품… 할인점엔 저가 中·동남아산…품질·가격경쟁력에 치여 '넛크래커' 전락 홍준석기자 jshong@sed.co.kr 김민형기자 kmh204@sed.co.kr 관련기사 유통업체 "해외로, 해외로…" 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김모(37)씨는 최근 겨울옷을 사기 위해 집 근처의 할인점을 찾았다. 김씨는 30여분간 매장을 둘러본 끝에 니트 두 벌과 남방 한 벌을 샀다. 원래는 니트만 구입하려 했지만 값 싸고 품질이 좋아 보이는 남방까지 한 벌 더 골랐다. 옷 뒷면 라벨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잘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지만 옷감이 좋고 마무리도 잘된데다 디자인까지 괜찮아 선뜻 장바구니에 담았다. 김씨는 “예전에는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많이 떨어져 좀 꺼렸지만 요즘 할인점에서 파는 상품들은 품질로만 보면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라 고민 없이 산다”면서 할인점을 나섰다. 국내 주요 유통매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 사라지고 있다.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백화점은 브랜드파워가 강한 해외 고가 상품 판매에 비중을 두는 반면 할인점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생산한 품질 좋은 저가 상품군을 대거 늘리고 있다. 품질은 좋지만 브랜드파워가 약한 중고가 국산 제품이나, 품질은 중국산 등과 비슷하지만 인건비 때문에 가격대가 오히려 높은 국산 제품들은 국내 유통업계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품질력과 가격 경쟁력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국산 제품이 국내 유통매장에서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할인점의 완구ㆍ의류ㆍ소형가전ㆍ생활용품 등 노동집약적 품목의 경우 중국산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중국산 제품이 국산 제품을 매장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 2003년 62%에 달했던 국산 완구의 비중이 지난해에는 52%로 10%포인트가량 줄었다. 반면 중국산의 비중은 2003년 38%에서 지난해 48%로 커져 국산 제품이 줄어든 만큼 늘어났다. 의류 역시 ‘디자인 유나이티드’ 등 자체 상표를 늘리면서 현재 매장에서 팔리는 상품 중 중국산이 60~70%이며 국산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 30% 전후에 불과했던 중국산 완구류가 지난해에는 절반에 가까운 45%로 늘어났으며 의류도 3년전 중국산은 50%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65%까지 늘어났으며 최근 증가추세가 더욱 가파르다. 홈플러스 의류팀 이종선 과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산은 저렴하고 품질이 낮다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최근에는 중국산 품질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역시 완구류의 경우 절반 가량인 45%, 정보통신 가전은 30%, 의류 및 잡화류는 40% 가량이 중국산이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 전점에서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얼사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소형가전 부문의 경우 중국산 비중이 상당히 높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해 6~8월에는 하이얼사의 에어컨이 한 달에 5,000만원어치가 팔려나가기도 했다. 롯데마트 가전담당 이영준 팀장은 “하이얼 제품은 한달 평균 3,000만원어치가 팔려나간다”며 “앞으로 DVD비젼이나 보급형 LCD TV 등 차별화된 품목을 입점시켜 매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반면 백화점들은 최근 소비심리 회복 기미가 보이면서 상위 VIP 고객의 매출 비중이 커지는 한편 고급 이미지를 통한 차별화를 위해 해외 명품 브랜드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주요 백화점들의 1층 매장은 예전에는 잡화, 화장품 코너 등이었으나 요즘에는 ‘샤넬’,‘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 매장으로 채워져 있다. 실제 화장품 매장의 경우 ‘시슬리’, ‘에스티로더’, ‘랑콤’등 해외 명품브랜드 일색이다. 350여개에 이른다는 국내 화장품 회사들의 브랜드 중에서는 태평양의 ‘설화수’, LG생활건강의 ‘후’정도만이 겨우 명함을 내밀만한 수준이다. 남성복 브랜드의 경우도 예전에는 제일모직, LG패션 등 국내 브랜드가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살바토레 페라가모, 폴스미스, 듀퐁 등 수입 브랜드가 남성복 매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화장품, 의류 등 패션상품은 수입산이 기본인데다 생활용품, 가구 등 할인점과 경쟁해야 하는 상품군에서도 경쟁적으로 해외 브랜드 도입을 늘리는 추세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해 한때 각국 왕실과 대사관, 최고급 호텔에 공급한다는 미국 최고급 맞춤가구 ‘조세핀’을 들여와 식탁 3,100만원짜리 식탁, 3,500만원짜리 소파, 2,100만원짜리 책상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할인점과의 경쟁 품목인 주방용품, 침구, 식기 등을 판매하는 생활용품 매장에서는 국산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의 경우 식기는 광주요와 행남자기를 제외하고 에르메스, 로열코펜하겐, 웨지우즈 등 대부분의 브랜드가 유럽산이며 심지어 발매트, 욕실용품 등도 일제히 수입 브랜드로 채워져 있다. 전문가들은 국산 브랜드들이 해외 명품 브랜드와 견줄만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이 같은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폴로’ 등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와 대항해 트레디셔널 캐주얼 부문에서 1위에 오르고 해외 진출까지 이뤄낸 제일모직의‘빈폴’ 같은 브랜드를 주목할 만하다. 빈폴 컴퍼니의 원종운 상무는 “고유의 제품 컨셉트 유지, 신개념 유통 전략, 디자인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15년간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1위에 올랐다”면서 “무엇보다 패션사업에서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 장기적인 안목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력시간 : 2006/01/06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