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야 건보료 부과체계 혁신 나서야


올 대선에서 누구를 선택하든 국민건강권 보장에 있어서 만큼은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암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오는 2016년까지 100%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통합당도 현재 60% 정도인 건강보험의 입원진료비 보장률을 90%로 확대하고 연간 본인부담금을 100만원 이하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재원대책 없이 보장성 강화 공약 난무

정치권이 이처럼 한 목소리로 건강보험 보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국민들의 여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우리의 경제력 수준에 걸맞지 않게 너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 지출비중 평균이 71%인데 한국은 겨우 58%이며 이를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환산할 경우 OECD 평균이 80%인데 우리는 겨우 62%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선진국들이 과거 우리나라의 현 국민소득 수준에 이르렀을 때의 보장성 수준은 80%를 넘었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서 아직도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고 질병을 키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효과 이외에도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개인 호주머니나 민간보험보다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으로 의료비를 조달하는 것이 훨씬 비용효과적이며 사회적 효율성도 높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의료비 문제를 국가가 앞장서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발전시켜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야심찬 보장성 강화 정책이 현실화되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상당한 추가 재원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재원 조달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을 제안했다. 직장가입자에게는 근로소득, 지역가입자에게는 가구원수ㆍ소득ㆍ재산(전세 포함)ㆍ자동차 등에 차별적으로 부과하는 현재의 이원적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함으로써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또한 보험료 부과소득의 범위를 기존의 근로소득에 추가해 이자ㆍ배당ㆍ연금ㆍ양도ㆍ상속ㆍ증여ㆍ기타소득에까지 확대하고 소비에 일정율의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보험료 부과기반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국민 모두가 능력에 비례해 공평하게 부담하고 보장성 강화에 대비한 재원 확충을 보다 손쉽게 하자는 취지다.

공단의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 발표 이후 각계의 지지와 우려, 그리고 비판이 교차하고 있다. 소득 중심의 일원화에는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소득 파악이 어려운 사람들의 무임승차 문제, 부과소득의 범위, 소비세 부과의 역진성 문제 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수술 없인 현 보장성 유지도 힘들어

사실 완벽한 답안은 없다. 핵심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의 답안을 찾는 일이다. 건강보험료와 관련해 국민의 불만 민원이 연간 1억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수십조원이 더 들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가. 보장성 강화는 고사하고 현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고령화 등으로 급증하고 있는 진료비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나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혁신 방안을 놓고 치열하되 열린 논의를 시작할 때다.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를 부르짖으며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눈감을 수는 없다. 부과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보장성 강화는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지혜를 모아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내놓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어려움을 딛고 모진 땀 흘리며 세계 최빈국의 국민에서 어려운 개도국을 돕는 원조국의 국민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경제력 수준에 걸맞은 건강보장 수준을 향유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부담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국민 모두가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튼튼한 건강보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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