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인 '감항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출항했다가 충돌사고를 냈다면 보험사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특히 이번 판결은 세월호 역시 안전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항했다가 변을 당했다는 점에서 향후 피해자 보상 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9일 국가가 "해군 군함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여객선 골든진도호가 가입한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9억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한국해운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여객선이 출항정지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기상상황에서 출항했음을 전제로 할 때 여객선에 설치된 레이더는 성능부족으로 3마일 이상을 탐지하기 어려워 이 사건 군함을 발견했더라도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군함이 여객선을 발견하고 초단파 무선통신기인 VHF 무선전화기를 이용해 호출했으나 여객선에 설치된 VHF 무선전화기의 송신기능이 고장나 이 사건 군함과 교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여객선이 항해시 감항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해운조합의 보험금 지급이 면책됐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 7월8일 오전9시께 A운수 소속인 여객선 골든진도호는 여객 34명을 태우고 차량 23대를 적재한 뒤 인천항에서 대연평도를 향해 출발했다. 인근 해역에서는 해군의 441톤급 군함 LCU-81호가 항해하고 있었는데 오전10시13분께 여객선이 갑자기 항로를 바꾸는 변침을 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국가는 여객선 측이 가입한 선박공제(책임보험의 일종) 계약상 보험자인 해운조합을 상대로 충돌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조합 측은 "당시 여객선의 레이더 성능이 나빴고 VHF 무선전화기가 고장났으며 승무원 정원이 5명인데 4명만 탑승했기 때문에 감항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런 경우 보험사의 지급 책임이 면제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여객선이 감항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감항능력이 없다고 판단 해운조합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