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3월18일] 나진 자동전화교환기

퀴즈 하나. 조선 말기에 전화가 들어오면서 시내전화가 먼저 보급됐을까 아니면 시외전화가 먼저일까. 정답은 시외전화이다. 시내전화는 훨씬 나중에 보급됐다. 이유는 당시 도시생활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상류층은 급히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하인을 시키면 돼 굳이 전화를 놓을 필요가 없었다. 1896년 처음으로 궁내부에 교환기가 설치되며 서울∼인천 전화가 개통됐다. 이때 사용된 전화기는 손으로 자석발전기를 돌려 교환원을 부른 뒤 상대방을 호출하는 자석식. 1908년에는 수화기만 들면 교환원이 나오는 공전식 전화기가 선보였다. 1935년 3월18일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화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는 자동식 교환기가 국내 최초로 함경북도 나진우편국에 설치됐다. 일제가 대륙침략 목적으로 군사적 요충지 나진항에 설치한 것이지만…. 자동식 교환기란 다이얼을 이용해 착신 가입자를 호출, 통화하는 방식. 교환원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공전식보다 통화품질이 좋기 때문에 수용능력이 크게 향상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화가 보급된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하나씩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흔해 빠진 게 전화다. 개통 당시 가입자 4명(서울 2명, 인천 2명)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유선전화사업은 오늘날 2,000만 가입자에 이르렀다. 무선전화 가입자 3,800만여명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0만 가입자에 육박해 실로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한국이 이룬 정보통신 발전은 `기적'이다. 한국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더 이상 권고할 것이 없다" 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조선 말기 궁중에 전화가 놓인 이후 100여년 만에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통신강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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