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투막집/삶의 지혜 담긴 옛 서민집(한국건축의 맥)

◎외형보단 다설지역 특성 감안/갈대이엉으로 이중벽체 형성/폭설때 각방통로·작업장 활용우리는 보통 전통건축을 궁궐, 사찰 등의 고급건축과 민가와 같은 서민주거용 건축으로 나눈다. 물론 고급건축쪽에 더 많은 건축적 정보와 풍부한 건축 경험의 가능성이 있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축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모든 고급건축은 서민용 주거 건축에서 출발된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서민용 보통집이 모든 건축의 원형이 된다. 제도권 내에서 문화적 형식과 인습적 격식, 그리고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급건축은 화려하고 편리하며 권위적인 모습을 갖게 되지만 바로 그러한 경향 때문에 건축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커진다. 울릉도에 가면 투막집이 있다. 화산의 분출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섬 중앙의 분화구에 해당하는 나리분지라고 불리는 곳에 일부 남아 있을 뿐 섬 내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십자로 엮은 통나무를 올려 쌓아 집의 벽체를 만드는 소위 귀틀집은 지방마다 다르게 부르는데 태백산맥 주변의 강원도나 경북지역에서는 투방집이라고도 부른다. 울릉도에서는 투막집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그러나 울릉도의 투막집은 다른 곳의 귀틀집과 다른 장치가 가미되어 있다. 그것은 지붕처마 끝선에 맞추어 우데기라고 불리는 새(갈대같은 식물)로 이엉을 엮어 또하나의 외부벽체를 만들어 집 주변에 둘러친다. 즉 이중벽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바깥쪽 외피는 겨울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 햇빛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때 주택내에서 작업을 할 수 있고 주택의 각 방을 연결하는 통로의 구실을 하게 할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보여진다. 울릉도에선 눈이 많이 올 때는 3m정도까지 쌓인다고 한다. 그러면 실내에 꼼짝없이 갇혀있게 되므로 이를 대비해서 생겨난 건축적 지혜일 것이다. 우데기 외피와 귀틀 내피 사이의 공간을 축담이라고 부르며 그 폭이 1.5m가량 되므로 통로와 작업공간으로도 충분하며 각종 저장공간으로도 쓰인다. 서민주택에서는 과도한 치장이나 불필요한 꾸밈이 없다. 그러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는 고루 갖춘다. 그러한 장치는 편리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노동력을 동원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절제되고 정직한 건축을 만들게 하고 그래서 순수하고 진실할 수 밖에 없는 집을 만든다. 그러한 집이 누추하고 불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금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눈길이다. 삶과 생존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현대 아파트와 비교해서 모자랄 것이 없는 집이다. 울릉도의 투막집은 그러한 삶과 생존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고층아파트보다도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곳에서만 필요하고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짓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지역적이고 향토적인 건축이다. 그러면서도 건축의 원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건축이 지향해야 할 건축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한국에서만 가능한 건축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건축적 신선함과 본질적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김성우 연세대학교 건축과 교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