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나라살림 마사지 사건

세입분식 주역들은 현정부 요직 꿰차
누워서 침 뱉기...정부신뢰 추락 좌초
숫자 놀음에 누가 세금 내고 싶겠나
성장회복 외엔 나라곳간 채울 길 없어


청와대는 지난주 MB정부의 경제정책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전 정부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한 올해 나라 살림살이를 알아보니 엉터리라는 것이다. 재정 균형을 억지로 맞추려고 재정 수입을 부풀렸다는 게 새 정부의 판단이다. 한마디로 나라 살림살이를 마사지했다는 말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눈에 훤히 보이는 세수 결손을 방치하면 한국판 재정절벽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섬뜩한 경고까지 날렸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세입 차질규모가 12조원에 이른다"고 거들었다. 그런 이유로 추경 편성규모는 세입 부족분 12조원에다 순수 경기부양 자금이 더해질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청와대 셈으로 본 나라살림 마사지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나치게 높게 잡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3%)를 2.3%로 바로잡으니 세수가 6조원 줄고 세외수입에 반영한 공기업 민영화도 어려우니 또다시 6조원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12조원은 한해 국민총생산(GDP)에 1%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불과 3개월 만에 천문학적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서 맨 먼저 머리를 스치는 게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가계살림도 이토록 어수룩하지 않은 법인데 나라 살림살이가 이 모양 이 꼴이라면 세금 아깝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나라살림 분식 사건이 사실이라면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비록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추계이기는 하나 재정절벽까지 들먹일 정도라면 나라 경제를 좀먹게 하는 공직기강 문란 행위나 다름없다. 만약 민간기업에서 그랬다면 모르기는 몰라도 재무 라인들은 죄다 쫓겨났을 것은 자명할 터.

그런데 사정은 딴판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나라살림을 책임지던 곳간지기 대부분 새 정부의 요직을 꿰찼다. 정치권 복지 공약을 검증하겠다며 나라 곳간 지킴이를 자처했던 당시 재정부 2차관은 국무조정실장으로 승진했다. 그 밑의 예산실장이 지금의 2차관이다. 경제성장률 뻥튀기를 한 경제정책 총괄 책임자인 재정부 1차관은 금융위원장에 발탁됐고 차관보는 청와대 비서관으로 영전했다. 세제실장은 관세청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공직자들의 침묵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새 정부에서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토록 목청을 높였다면 감사원 감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위 파악 정도는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세입 마사지를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장차관 인사를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자가당착이고 아니라면 다른 꿍꿍이 속이 있었던 게다. 추경 편성의 명분을 삼기 위해 전 정부를 때린 것이라고 쑥덕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성장률 전망치가 터무니 없네, 세수 추계가 엉터리네 하는 과거 부정식 폭로 따위는 국민의 눈에는 한낱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누워서 침 뱉기요, 정부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자충수다. 따지고 보면 세외수입 6조원 감소라는 것도 전 정부의 탓도 아니다. 새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그대로 진행하면 그만이다. 6조원의 세수 펑크도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라 곳간 사정은 지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성장에 달려 있다.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라면 세수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국세수입이 2조원 펑크 나는 것도 모자라 여윳돈인 세계잉여금마저 사상 첫 적자를 낸 것도 저성장 탓이다.

새 정부로서는 텅 빈 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출발했으니 억울한 심정이겠지만 전 정부의 실책을 지금 와서 따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추경 명분을 쌓을 요량이라면 정공법으로 나서야 한다. 남 탓하지 말고 왜 필요한지, 효과는 뭔지, 적자 국채를 찍어내면 어떻게 나중에 메꿀 것인지 국민 앞에 솔직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순리다. 135조원짜리 공약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든다면 나라 곳간 해법은 더더욱 풀기 어렵다. 이제 막 출발한 새 정부가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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