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호텔 하나 없는 관광 코리아

낡은 잣대에 호텔신라 등 신·증축 잇단 무산… 규제 재검토해야

국가경제 규모 확대와 문화한류 확산에 따른 관광 수요 증가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를 열었다. 올 들어 엔저에 따른 일본인 관광객 방한이 주춤한 가운데서도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해 1,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연간 1,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국을 찾지만 이들이 머물 호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할 만한 호텔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글로벌 호텔 체인의 브랜드를 달고 영업하고 있는데다 매년 늘어나는 관광객 수요를 노리고 한국형 호텔을 추진하겠다던 기업들의 계획은 규제에 막혀 속속 무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서울신라호텔의 증축 계획이다. 최태영 서울신라호텔 총지배인은 이달 초 7개월간의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하면서 "한국 토종 브랜드를 단 아시아 최고 호텔이 목표"라며 "삼성전자가 세계 1위가 됐듯이 더 나은 시설과 서비스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토종 브랜드라는 호텔신라의 꿈은 지난 2011년 이후 세 차례나 좌절되며 표류하고 있다. 호텔 부지 내에 4층 규모의 한국 전통호텔과 3층 규모의 면세점, 장충단근린공원 지하주차장 설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건립안은 서울시가 해당 부지 인근 지역의 서울성곽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진 건 등과 양립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속 퇴짜를 맞았다. 서울신라호텔은 계획안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 계속 도전할 계획이지만 서울시의 입장이 완고해 언제쯤 허가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한항공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건립 계획도 마찬가지다. 2008년 3만7,000㎡에 달하는 미국대사관 관련 부지를 매입한 대한항공은 한국형 영빈관을 포함해 호텔ㆍ미술관ㆍ공연장 등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길 하나만 건너면 경복궁이 위치해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분위기로 호텔을 지어 한국 관광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계획은 '학교보건법'에 가로막혔다. 사업지 반경 200m 내에 학교가 있다는 이유로 중부교육청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호텔 건립 계획을 좌초시킨 학교보건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상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면 규제방식도 재검토돼야 한다"며 "관광객 1,200만 시대, 관광 코리아를 외치고 있지만 방한 외국인들이 외국계 브랜드를 단 호텔에서 머물다 떠난다"고 지적했다.

반면 기존 잣대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호텔 건립 신청이 줄줄이 통과되면서 기존 호텔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공멸 우려까지 낳고 있다. 상업지역인 서울 명동 일대의 경우 호텔 신축ㆍ용도변경 등과 관련해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으면서 대기업 계열, 중소업체 할 것 없이 신규 호텔이 난립하고 있다.

명동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영업해온 한 호텔 관계자는 "호텔을 단순히 건축물이라는 관점으로만 보고 법적 조건을 충족한다고 무조건 허가를 내주면 되느냐"며 "지역별 숙박 수요 등 생존과 직결된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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