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기업의 절대권력과 구조적 문제점 해부

■ 기업의 경제학 조엘 바칸 지음, 황금사자 펴냄


2001년 12월,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된 에너지 기업 엔론(Enronne)이 몰락했다. 엔론은 로비를 통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을 조작해 폭리를 취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으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자 엔론은 파산했다. 시장의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의 기업지배구조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비판 여론이 드세졌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엔론 사태는 테러 공격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미국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엔론을 파산으로 이끈 경영진의 부정과 순익ㆍ주가에 강박관념을 갖는 기업 속성이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부각됐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하던 1776년만 해도 영국 정부는 50년 이상 기업 설립을 법으로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산업혁명 촉발로 대규모 산업이 전개되자 정부는 정책을 펴는 인공적인 도구로서 기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주식회사 대기업이 탄생한 지 150년 만에, 기업은 경제구성의 한 요소를 넘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법학교수인 저자 조엘 바칸은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저자는 기업을 두고 "다면적인 인간 심리 가운데 오직 물욕만 추구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존재"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책은 엔론의 파산은 물론 최근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까지 거대 기업의 부조리가 발생한 근원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분석했다. 저자가 지적하는 기업의 구조적 특징은 첫째, 경영과 소유의 분리다. 기업이 파산해도 소유주인 주주는 주식을 산 기업이 이익을 내는 한 사회에 해를 끼쳐도 신경 쓰지 않다는 게 문제다. 둘째는 기업이 법적인 사람(법인)으로 인정받아 잘못을 저질러도 기업이 벌금을 물 뿐 경영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속성이다. 셋째는 경영자가 오직 주주의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경영하도록 강요 받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같은 기업의 구조적 특징에 기인해 기업 관련 문제점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고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관으로 재규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간다. 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 노암 촘스키와 글로벌 CEO 등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다큐멘터리 영화와 TV시리즈로도 방영된 화제작이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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