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지난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써 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추도사 중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글이다.
김 전 대통령은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18일 영원한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 전 대통령마저 영면에 들자 불과 석달 사이에 두 전직 대통령을 잃은 국민들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첫 인연은 반갑지만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결과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자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손잡고 민자당을 탄생시킨다.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민주당에 잔류하던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김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등 정계복귀 움직임에 '3김 정치' 비판에 날을 세웠던 것.
하지만 2년 뒤인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대선에 도전할 때, 노 전 대통령은 영남 정치인 중 유일하게 그의 편에 섰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 행정경험을 쌓게 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은 참여 정부 출범 이후 다시 관계가 틀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마자 '대북송금 특검'과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이 구속 수감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불편해졌다.
하지만 민주 진영이라는 큰 줄기에서 두 사람은 영원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김 전 대통령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누구보다 애통해 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정치적 행보를 넓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스러져가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치며 힘든 발걸음을 움직여 민주세력의 '행동'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현 정부를 향해, 그리고 왜곡된 사회를 향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민주화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지폈다. 하지만 이는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과 이후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로 인해 원래 좋지않았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폐렴으로 지난달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같은 달 15일 오후 1시쯤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이후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지난달 16일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했고, 합병증의 하나인 폐경색증으로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특히 지난 9일부터 위독한 상태에 빠졌으며 혈압 상승제 등 각종 약물을 투여해 생명을 연장해 왔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폐렴의 합병증인 다발성 장기부전, 호흡곤란증후군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85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노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까지 한 해 두 분을 보내드리는 것이 너무 슬프다", "올 해에만 큰 별이 둘이나 졌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