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투자자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기업과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나아가 주주 관여를 통해 회사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대화하고 조언해야 합니다."
류영재(54·사진)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본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바람직한 기업문화 정착을 위해 의결권 행사를 비롯한 주주 권리 강화는 당연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류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류 대표는 "대부분의 운용사가 대기업 계열사이거나 대기업과의 이해관계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현실적 제약이 많다"며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민연금이 일관된 원칙과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특정 사안에 대해 일관성 있게 반대를 해나간다면 전체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선정시 의결권 행사 내역도 평가방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국민연금이 기존의 의결권 행사를 넘어 기업과 보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주주권 행사는 △의결권 행사 △주주관여 △소송 등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뉘는데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소송을 거는 것은 기업과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해외 연기금의 경우처럼 주주 관여를 통해 투자한 회사의 노사갈등 문제, 사외이사 선정 등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페트로브라스는 취약한 재무구조와 정부의 지나친 간섭,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투자자들의 불만이 많은 회사였다. 류 대표는 "브라질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 주주들은 회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영진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주총을 개선하고 이사진에 독립적인 이사를 앉히도록 요청했다"며 "그 결과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기업 중 최초로 소액주주가 제안한 인사를 이사진 후보에 포함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기금들의 의결권 행사 강화로 과도한 경영 간섭이 우려된다는 재계의 불만에 대해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류 대표는 "주주들의 가장 큰 관심은 기업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것"이라며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기업에 대해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도 투자자들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대표는 "한국의 경우 정기 주총 개최 14일 전 주총 안건을 확정하는데 투자자들이 안건에 대해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하며 "주주들이 주총 안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주총 안건 확정 시기를 지금보다 앞당기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주총 안건 분석 회사 ISS에 따르면 홍콩의 경우 21일 전, 대만의 경우 30일 전에 주총 안건을 확정한다.
그는 또 기업들의 사외이사 이력이 너무 간단해 사외이사 후보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출신 학교와 경력 몇 개를 단순히 나열하는 식으로는 사외이사 후보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경우처럼 연도별로 사외이사 후보자의 경력을 상세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