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시장 규모축소에 대비… 새 성인시장 개척 업계 사활'아이들만 장난감 가지고 놀라는 법 있나'
완구업계가 어른들을 겨냥한 공략의 발길을 가속화하고 있다.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는 부모로서가 아니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직접 고객으로서 장난감 업체들의 새로운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
어린이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기존 제품의 내용과 가격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것부터 옛날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 제품에 이르기까지 업체들은 어른들을 장난감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난감 업체들이 어른들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어린이들에게만 의지해서는 시장 규모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
인터넷과 첨단오락 등에 밀려 기존 장난감을 외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데다 출생률 감소로 어린이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자 시장의 위축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성인 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고령화와 함께 어린이 감소 추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특히 성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 1위의 완구업체인 반다이사는 로봇 애니메이션 '건덤'의 조립 모형을 어른용으로 내놓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9만8,000엔에 한정 판매됐던 1.5미터 크기의 대형 모델 1,500개가 모두 팔려 나간데 이어 8월에는 특수 기술을 도입한 크기 75㎝, 7만8,000엔의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
이 제품의 주요 고객층은 어린시절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성인 남성들. 수십~수백만원에 달하는 가격대와 500여개의 부품을 나사 조립식으로 맞춰 나가야 하는 제품 특성을 봐도 어린이들을 겨냥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반다이는 이밖에도 지난달 100종류의 말소리를 입력한 '술 따르는 로봇'을 출시, 피로에 지친 샐러리맨들을 공략하고 나섰다.
이 제품에 맥주 캔을 꽂고 잔을 갖다 대면 여성 탤런트의 형상을 본 딴 소형 로봇이 술을 따라주면서 말을 건넨다. 잔이 찼다고 말을 하면 사람 목소리를 감지해 자동적으로 술 따르기를 멈추게 돼 있다.
또 다른 일본의 대형 완구업체인 다카라도 여름을 맞아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는다. 다음달 중 애완견이 짖는 소리를 감지ㆍ분석해 개의 감정을 액정 패널에 표시하는 신제품 '바우링귀얼(Bowlingual)'을 출시하는데 이어 오는 11월에는 지난 80년대 이래의 인기 미니카를 실물 크기로 확대한 전기자동차 'Q-CAR'를 99만엔에 내놓을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액에도 불구, 벌써부터 중년 남성들을 중심으로 구매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다카라는 지난해에도 이 미니카 모델을 적외선으로 조정토록 한 '디지Q'를 출시해 지난 3월까지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70만개의 매출을 올린 바 있다.
일본은 지난 2000년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했던 14세 이하의 '연소자 인구'가 오는 2021년에 12%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등 향후 어린이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완구업체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경영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각박한 현대사회와 날로 확산되는 불안 심리로 인해 어른들이 옛 시절의 향수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한다는 점도 완구업체들의 착안점이다.
장난감으로 외로움을 달래려는 노년층도 늘어날 전망이어서 업체들은 실버 세대도 거대한 잠재시장의 하나로 보고 있다.
미국 등에서도 어른들이 장난감 업체들의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 매김되고 있다. 지금은 부모가 된 X세대들을 겨냥, 이들이 70년대 말~80년대 초반에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인형을 재출시해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업체들의 공통된 전략.
장난감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값비싼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부터 '복고'식 인형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을 위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해 놓고 있을 정도. 살아 남기 위한 장난감 업체들의 몸부림은 수십 년 동안 떠나 있던 어른들의 발길을 다시 장난감 가게로 되돌려놓고 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