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최 부잣집 육훈과 동반성장


최근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생발전이 화두가 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민심을 겨냥한 공약경쟁도 한창이다. 동반성장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은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부문 간,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균형 회복과 조화로운 발전을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여기서 경북 경주의 최 부잣집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향이 경주인 필자는 지금도 남산 기슭 아래 남천 건너에 있던 교동 최 부잣집을 기억한다. 남산에 놀러가 기슭에서 바라보면 바로 보이던 그곳이다.

옛날 최 부잣집은 엄청 부자였던 모양이다. 어릴 적 이런 말들이 있었다. 경주 주변 사방 80리를 최 부잣집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는 게 하나다. 또 하나는 집안 식구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고뿔이 최 부잣집에나 가지 여긴 왜 왔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 와서 약값 쓰게 하지 말고 그래도 여유 있는 최 부잣집에나 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서민의 고단한 삶을 반영해 약간의 심술, 질시의 해학을 담은 말이리라.

그런 최 부잣집에는 육훈(六訓)이란 게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흔히 인용한다. 육훈을 관통하는 정신은 한마디로 자기절제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않는다 ▦재물은 모으되 만석 이상 집에 들이지 않는다 ▦흉년에는 절대로 땅을 사지 않는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다 ▦찾아오는 과객은 귀천 없이 후하게 대접한다 ▦시집 온 새색시에게는 3년간 무명옷을 입힌다 등 이 여섯 구에는 자기절제의 바탕에 이웃을 배려하는 구휼 정신이 배어 있다. 하나하나가 도덕염치의 최소한이다.

중소기업 현장을 다녀보면 별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일감 몰아주기는 약과이고 납품가 후려치기, 기술ㆍ인력 빼가기, 거래선 끊기 등의 불공정 행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합법인 경우도 있고 합법을 가장한 것도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대기업들이 최소한의 자기 절제심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무리도 있을 것이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기업가 정신이고 경쟁의 원리라며 우리 살기도 급하다고 항변한다면 반박할 말도 궁하다. 그러나 생태계가 무너지고 난 다음에 혼자 서 있는 소나무가 결국은 뿌리째 태풍에 날아갈 수 있듯이 우리 경제에 있어서도 건전한 생태계 구조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토끼 사냥을 멈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