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캄캄한 그리스 대형은행

ECB 자금수혈 연기, 현금바닥
구제금융 돼도 구조개혁 불가피
문 닫거나 인수 될 가능성 높아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스 대형은행들이 시장에서 대거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긴급유동성지원(ELS)을 동결하는 등 자금수혈이 미뤄지면서 보유현금이 바닥난 은행들이 자동적으로 파산할 수도 있고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 간 협상이 타결돼 구제금융이 지원되더라도 구조개혁으로 은행들의 폐쇄와 인수합병(M&A)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익명의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을 인용해 구제금융이 지원되더라도 그리스 대형은행 중 일부가 문을 닫거나 경쟁은행에 인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관계자는 구제금융 집행과 함께 ECB가 그리스 금융시장에 개입해 자본재편 및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 은행의 합병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 경우 그리스 내 대형은행인 그리스국립은행, 유로뱅크에르가시아스, 피레우스, 알파은행 등 4대 은행 중 2곳만 생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구제금융 지원이 국내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나라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스에 앞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구제금융을 받았던 키프로스는 지원 이후 대형은행 2곳이 문을 닫았고 아일랜드도 은행 3곳이 폐업하거나 매각됐다.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와의 합의가 불발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로이터는 이미 보유현금이 바닥난 그리스 은행들이 정부가 13일까지 연장한 자본통제 조치로 현금인출이 제한된 상태에서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며 정부의 통제가 해제될 경우 은행들은 문을 여는 즉시 줄도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스 은행들이 외부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ECB는 8일 그리스에 대한 ELA 한도를 890억유로가량으로 다시 한번 동결했다. 그리스 은행들의 자금확충 통로도 사라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무를 탕감해 그리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에 참석해 "위기 상황에 놓인 그리스를 위해 진지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해법은 그리스 정부의 개혁과 채무조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도 "채권단과 그리스 양측이 신뢰를 쌓아 그리스는 필요한 개혁을 하고 유럽은 채무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 협상을 위한 새 개혁안을 9일 제출했다. 그리스의 새 제안은 11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협의체)이 먼저 논의한 후 하루 뒤인 12일 28개국 유럽 정상들이 모인 유럽연합 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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