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 편두통 환자가 더 심해

곧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로 접어든다. 이런 계절에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벌써부터 주말에는 넘쳐 나는 여행객들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이럴 때 반갑지 않는 손님이 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차멀미가 바로 그것이다. 멀미는 대부분 아이들이 더 심하지만 어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의학용어로는 그럴듯하게 `가속도병``동요병(動搖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병 아닌 병 멀미에 대해 을지대학병원 손성일(신경과ㆍ042-259-1266)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눈 따로 귀 따로, 엇박자가 부른 가속도병 멀미는 자동차ㆍ배ㆍ비행기ㆍ마차 등 모든 탈것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사람의 등에 업혔을 때에도 생길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90%의 사람들이 멀미를 느끼거나 경험한다. 원인은 감각의 불일치다. 보행을 배울 때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눈ㆍ귀 등의 감각 기관계의 반응이 머리 속에 기억되는데 나중에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생기면 기억된 정보를 갖고 감각기관이 미리 예측을 해 준비하고 반응한다. 그러나 차를 탄 상태에서는 이동에 따른 근육의 움직임이 없거나 기존 기억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감각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따라서 일상적인 움직임과는 다른 엘리베이터ㆍ배ㆍ비행기ㆍ자동차를 처음으로 탈 경우 대부분 멀미가 생긴다. 배를 오래 타던 사람 가운데는 배 흔들림에 완전히 적응이 되어 오히려 육지에 내렸을 때 멀미(이를 땅 멀미라고 부름)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멀미와 관계되는 감각기관 중에서도 특히 귀가 중요하다.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균형을 인지하는 세반고리관과 전정신경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통틀어 전정기관이라 한다. 차의 발진이나 정지 등과 같이 급격한 움직임으로 전정기관이 강하게 자극을 받으면 어지럼이 심해지면서 속이 더 메스꺼워진다. 두려움이나 피로감 같은 정신적 요소도 전정기관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이다. 가솔린이나 배기가스 냄새를 맡거나 멀미에 대한 지나친 걱정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하게 멀미를 하게 된다.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민감한데 여성은 특히 생리기간에 멀미가 더 잘 일어난다. ◇아기가 멀미를 안 하는 이유 멀미의 대표적인 증상은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이다. 그 외 졸음ㆍ무기력ㆍ두통ㆍ복통ㆍ식은 땀ㆍ한숨이나 하품이 나는 현상도 멀미 증상 중의 하나이다. 계속되면 결국 음식물을 토하고 기운이 빠지며 기분도 나빠진다. 이러한 증상은 한 시간 이내에 회복되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는 누워있던가 안겨있는 때가 많고 자기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전정기관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기 때에는 멀미를 거의 하지 않다가 1∼3세쯤부터 심해진다. 소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멀미를 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 50세가 넘으면 멀미를 거의 하지 않게 된다. ◇편두통도 멀미를 부를 수 있어 멀미는 병이 있거나 몸이 약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측 전정기관에 고장이 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에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전정기관이 유난히 과민한 사람의 경우는 몸에 익혀 익숙해지는 길밖에는 없다. 이처럼 멀미는 건강한 사람들도 전정기관의 기능에 따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병 아닌 병이다. 다만 편두통을 가진 환자의 경우 정상인보다 차멀미가 심할 수 있다. 편두통성 어지럼증이 있는 환자는 어지럼과 두통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두통 없이 어지럼만 나타날 수 있으며 대부분 멀미가 심한 증상을 보인다. 상당수 환자는 편두통 치료를 받으면 멀미도 호전된다.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럼 느끼면 큰 병 의심 운송수단을 타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멀미와 비슷한 어지럼을 느낄 때는 중요한 질병의 신호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생활 속에서 멀미 같은 어지럼증은 양측 전정기관 중 한쪽에 이상이 생겨 평형이 깨짐으로 생긴다. 예를 들면 두 바퀴로 가는 리어카의 양쪽 바퀴에 바람이 같이 들어 있으면 똑바로 가지만 한쪽 바퀴에 바람이 빠진다면 한쪽으로 돌게 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가장 많게는 뇌의 혈류 부족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다. 세반고리관 등 말초 전정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내이(內耳)는 매우 민감한 기관이며 특히 혈류 변화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소하게는 담배나 카페인, 과도한 염분 섭취에 의해 뇌혈류가 감소해서 어지러워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래 서있거나 갑자기 일어섰을 때 어지럼을 느끼는 기립성 조절장애도 있을 수 있다. 감정적 스트레스나 불안, 긴장이 일으키는 동맥의 경련도 어지럼증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고령ㆍ심기능 저하ㆍ고혈압ㆍ당뇨ㆍ고지혈증 등 뇌혈관질환 위험요인을 가진 환자들이 중풍초기 증상으로 어지럼증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조기 검사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 외상을 입거나 감염에 의해 내이가 손상되었을 경우에도 어지럼과 메스꺼움 등 심한 멀미 증세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정기관이 회전감각에 대해 모순된 신호를 두뇌에 보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 또는 공기 중의 항원에 노출될 때 일부에서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드물게는 다발성 경화증, 매독려씨?등 많은 신경 질환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원인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예방이 최고…특효약은 없다 멀미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거나 차를 탈 때 흔들림이 적으면서 창문을 통해 흔들림을 예측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버스나 자동차는 앞좌석, 비행기는 주날개 위쪽 좌석, 배는 가운데가 적당하다. 복도쪽이나 폐쇄된 공간보다는 창문 주변이 좋으며, 벨트나 단추 등 신체에 압박을 주는 것은 느슨하게 풀어주고 심호흡을 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바라보면 도움이 된다. 또 차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등을 보인 채 앉는 것보다 앞을 향해 앉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를 타기 전에는 과식과 술을 삼가야 하며, 차 안에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등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잠을 자면 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면을 취하는 것도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멀미가 아주 심해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동일한 운전사가 운전하는 동일한 차량, 그리고 전방이 잘 보이는 일정한 자리에 앉는다면 빠른 시간 내에 적응된다. 시중에 나와있는 멀미약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멀미약은 전정기관의 기능을 둔화시켜 멀미를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스코폴라민제제인 붙이는 멀미약이 가장 많이 쓰이는데 출발 4시간 전엔 붙여야 한다. 그러나 이 약은 ▲입이 마르거나 ▲졸리고 ▲시야가 흐리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의식이 흐려지는 부작용이 올 수 있으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약을 만진 후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는 것도 잊지 말자. 먹는 멀미약은 항히스타민제로 출발 1시간 전에 복용해야 하는데, 심하게 졸리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임산부는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멀미약도 복용하거나 붙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멀미약은 단지 예방효과만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뒤늦게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으며 차에서 내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편히 드러누워 차가운 공기를 쏘이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최선의 응급 처치법이다. <박상영기자 sa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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