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로 연기 인생에 굵은 획을 그은 배우 하정우(31)가 비인기종목인 스키 점프 선수들의 애환과 비상을 다룬 '국가대표'를 통해 300만 관객을 만났다. 어릴 적 자신을 미국에 입양 보낸 친엄마를 찾기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밥 역을 연기한 하정우는 "그동안 방황과 방랑을 거듭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면 스키점프를 하는 밥의 멋진 도약처럼 이번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2006), '숨'(2007)에 출연해 예술영화 전용 배우인가 했더니 '추격자'(2008)의 살인마 지영민 역으로 범죄 영화 붐을 일으켰다. '비스티 보이즈'(2008)와 '멋진 하루'(2008), '보트'(2009) 등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군상의 모습을 다양하게 대변하더니 최근에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으로 대중 곁에 한 발 다가서는 영리함마저 드러냈다. 실제 마주한 하정우는 그에게 내재한 끼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매우 궁금해질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젊음을 영화에 온전히 바치고 싶다"며 웅변할 때에는 눈에서 오라가 비쳤다. -- '추격자' 이후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불안과 긴장을 엿보였다면 '국가대표'는 동료배우들과 한바탕 즐기고 온 듯한 여유가 느껴진다. ▲ 작품 속 캐릭터와 홍보에 나섰을 때 보여주는 색을 일치시키는 부분이 있다. 일부러 의도한 것도 있다. '추격자' 때는 하정우 개인이 노출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겠다고 생각했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부분도 철저히 영화에 일치시키려 했다. 당시 모 인터뷰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임했는데 진행자가 계속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종용했다. 건방지게 왜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를 하냐는 분위기였다. 그런 생각은 매우 고루한 것 같다.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과는 다른 문데다. 살인마의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걸 왜 몰라줄까 아쉬웠다. 그 인터뷰에선 끝까지 벗지 않았다. -- '무릎팍도사' 등에서 부모님의 이혼이나 여자 친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것에 후회는 없나. ▲ 사실 집안 문제나 여자 친구 이야기가 이렇게 파장이 클 줄은 몰랐다. 그 프로그램에 나간 이유에 홍보 목적도 있지만 기왕 나갔으면 내가 할 몫은 충분히 하고 싶었다. 진짜 내 고민을 얘기하고 나누면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었다. 뭐 저런 얘기를 하느냐는 시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부분도 이미 12년이 흘렀다면 당사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상처나 아픔이라기보다 두 분의 운명이었고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다. 더 이상은 없다. --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여자 친구 구은애가 몇 주간 검색어 1위였다.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나. ▲ 물론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도 검색어에 별로 올라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두 사람 다 즐기고 있는 단계다. -- 사생활을 숨기려는 대부분 스타들과 달리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 때문에 손해본 적 없나. ▲ 배우도 연예인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만큼 내 삶 자체는 연예인이라는 것으로 규정된다. 주위에서 너는 셀러브리티고 쇼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가리고 포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절친인 (전)도연이 누나는 "네 자신을 귀중히 여기라"며 충고도 한다. 솔직함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인간 김성훈 자체다. 사생활을 악용할 생각도 없고 어떤 목적으로 소비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 자체를 포장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드러낼 뿐이다. -- 하정우의 연기 인생에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인가. ▲ 왜 이 작품에 끌렸는지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 자신도 젊은 시절 방황했던 기억이 많았던 것 같고 나 자신도 그런 기억이 있다. 이런 부분이 밥이라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극 중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밥'이 점프를 하며 마무리되는 엔딩신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 그 장면처럼 이 작품이 내게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하정우가 그동안 겉도는 이미지의 인물, 방랑과 방황을 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면 '밥'으로서 그것을 마감한 것 같다. 그동안 캐릭터나 작품 선정에 있어서 나 자신의 심상이 많이 반영됐다. 나를 대변해줄 수 있는 캐릭터들을 골랐던 것 같다. --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점? ▲ 가장 힘든 건 7개월이 넘는 장기간 촬영이었을 거다. 육체적 고단함이야 모든 현장에 있는 것이지만 운동선수 역할이어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반복 촬영이 많았기에 그런 부분은 힘들었던 것 같다. 원래 장기적인 걸 싫증내는 스타일이다. 술 먹고 우는 사람과 술자리가 지루한 것을 가장 싫어한다. -- '비스티 보이즈', '보트', '멋진 하루' 등 일련의 작품에서 겉으로는 명랑하지만 내적으로는 결핍이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인물들을 연달아 연기한 이유는. ▲ 그때 그때 내게 이해되고 이입되는 인물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무릎팍도사'에서 얘기한 것은 어찌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면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서른두 살이다. 아직 내 역할들의 공통점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기자들은 너무 급하게 파악하고 정리하려는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좀 더 나를 지켜봐주면 좋겠다. 단 데뷔 후 매우 용감하고 과감하게도 '보트'나 '비스티 보이즈'를 선택할 수 있었던 데는 평단이나 기자들이 후한 점수를 주며 응원해 준 덕도 있는 것 같다. --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짧은 출연으로 큰 웃음을 줬다. ▲ 홍 감독님은 마치 작은아버지 같고 선생님 같은 분이다. 홍 감독님이 원래 배우들에게 특별히 설명 같은 걸 안해주는 분으로 유명한데 나는 뭐든 다 물어봤다. 왜 아침에 대본을 주시는지 장면마다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 다 물어봤다. 그래서 많은 부분 조언을 받았다. 감독님은 어떨 땐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또 진리를 통찰하는 인생 조언자 같은 면도 있다.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리이고 힌트가 있다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고)현정 누나도 그렇고 홍 감독님도 그렇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편인데 내가 경험 못한 것에 대한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다. -- 작품 활동을 쉴 때는 어떻게 지내나. ▲ 얼마 전 독립을 해서 집을 옮겼다. 어릴 적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집들이를 크게 하며 친구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들은 내가 연예인이라는 조명 효과에서 깨어나 돈 만 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이들이다. 그들이 아니면 30대 초반의 내 또래 남자 직장인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얼마나 주식에 관심을 가지는지 알지 못했을 거다. 다양한 직종에 있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과 일상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며 지낸다.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이현세 작가가 20, 30대 때 만화를 그리느라 젊음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영화를 찍는 일에 내 젊음을 바치고 싶다.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다. 너무 고루할지 모르지만 보통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때가 되면 군대에 가고 또 결혼을 하고 그런 삶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젊음에 기대어 뭔가 튀려고 하고 돌발 행동을 한다면 자신이 집중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뺏긴다. 내게 현재 가장 중요한 원천은 젊음이다. 40대 이후에는 노하우와 연륜으로 일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기본을 지키며 영화에 온전한 젊음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