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이슈] 아일랜드 총리 내정 '엔다 케니'

구제금융 재협상 등 난제 많아…'켈틱 호랑이' 부활 가시밭길
협상시간 촉박·獨 호응 미지수… 안팎 유로존 탈퇴 압력도 커져
단기에 정상궤도 진입 어려워… 법인세 인상 여론수렴 논의등 외자 의존 경제모델도 수술대



"구제금융 재협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나는 아일랜드의 운명을 되돌릴 준비가 돼 있다." 아일랜드 총선이 치러진 지난달 25일. 통일아일랜드당(Fine Gael)이 집권 공화당(Fianna Fail)을 물리치고 14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하자 통일아일랜드당 당수 엔다 케니는 가장 먼저 구제금융 재협상 방침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브라이언 카우언 전 총리와 공화당을 구제금융 '주범'이라 비난하며 통일아일랜드당에 표를 던진 아일랜드 유권자들은 케니 당수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유럽 정계는 오는 9일 총리직에 공식 취임하는 케니 당수의 미래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공약한 구제금융 재협상의 실현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아일랜드 경제를 단기간에 정상궤도에 올려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앞에는 아일랜드 경제 모델 대수술과 유로존 탈퇴를 종용하는 안팎의 압력까지 들이치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정권 탈환에 성공하며 총리직에 오른 케니가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비유했다. 케니 당수가 '켈틱 호랑이'의 부활을 도모하기에 현실은 암울하게만 보인다. ◇구제금융 재협상 잰걸음 행보 = 케니 총리는 총선 공약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과 맺은 구제금융 재협상'에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있다. 총선 직후 현지 방송사 RTE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부과된 징벌적 성격의 대출 이자율(5.8%)과 채무액 감면을 반드시 이뤄내고, 아일랜드 납세자들에게 지워진 채무액을 민간 투자자가 나눠 부담하는 베일인(bail-in)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가 EU와 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액수는 총 850억유로에 달한다. 이 같은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케니 총리는 당장 지난 4일 유럽 의회 국민당(EPP) 그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재협상 방침을 피력했다. 케니 총리는 메르켈 총리와 같은 국민당(EPP)에 몸담으며 친분을 쌓아 온 만큼 EU의 '맏형'인 독일이 평균 5.8%에 이르는 ECB 대출 이자율을 낮춰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구제금융안을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이달 24일~25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유로존 구제금융 패키지 방안이 최종 도출되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그가 EU 회원국들을 설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케니 총리는 총선 승리에 도취될 사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 사이 승부를 보지 못할 경우 아일랜드 민심은 한 달 만에 차갑게 돌아 설 수 있다. 독일이 선뜻 케니 총리의 요청에 화답할 지도 미지수다. 독일은 유로본드 발행과 구제금융 기금 확충을 줄곧 반대해왔고 아일랜드의 모럴 해저드를 막으려면 현 이자율이 적당하다는 입장이어서 케니 총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아일랜드 경제모델 수정하나= 케니 총리가 아일랜드를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한 경제 모델에 칼을 들이댈 지 여부도 관심 사항이다. 아일랜드는 지난 1987년 찰스 호히 전 총리 취임 이후 감세정책과 규제 철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며 200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과도한 유동성에 따른 자산거품과 외자 의존도가 심화됐다. 또 저임금을 앞세운 동유럽의 외자유치 확대로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국 2004년 외국인직접투자가 순유출로 돌아서는 등 성장모델의 한계를 맞았고 아일랜드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후 폭삭 주저앉았다. 해외 자금줄이 끊기자 정부는 내수 부양을 위해 직접 은행들의 보증을 서며 돈 풀기에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부동산시장 거품과 부채 증가였다. 현재 아일랜드 실업률은 15%에 육박하고 지난 해 재정적자 비율은 GDP대비 32%까지 치솟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아일랜드 정치권이 과거의 영화에 취한 나머지 아직도 새로운 정책 대안 마련에 주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EU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주권'을 내세우며 유럽 최저수준인 법인세율(12.5%)은 못 올리겠다고 버티고 있다. 케니 총리는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구제금융 재협상에 집중할 것이며 법인세 인상은 시간을 두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논의할 것 "이라고 말했다. 유럽 언론들은 "케니 총리가 구제금융 재협상에 나설 때에도 독일과 EU의 법인세 인상 요구는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고조되는 유로존 탈퇴 압력 = 여기에 아일랜드 일부 강경파들은 케니 신임 총리가 유로존 탈퇴라는 극약처방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아일랜드 정부가 고강도 긴축 재정과 구제금융 재협상 등을 통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긴축 조치가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EU와 IMF로부터 빌린 고이율 대출은 파멸의 시간을 조금 더 늦출 뿐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경제연구기관인 인텔리전스유닛(UIT)의 메건 그린 애널리스트는 앞서 FT에 기고한 글에서 아일랜드가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가 자체적으로 통화를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로존에 계속 머물 경우 수출길이 영원히 막힌다는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가 숙련된 노동 시장을 가지고 있는 등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유로화를 버리는 것이 지속적 성장으로 돌아오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일간 텔레그라프는 "아일랜드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케니 총리에게 유로존 탈퇴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것을 촉구했다"며 " 케니 총리가 유로존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전 정권처럼 계속해서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