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파노라마] 일 대기업 사장들 '홍보사절' 열심

그동안 대외활동에 소극적이던 일본 대기업 사장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며 「걸어다니는 광고탑」으로 변신하고 있다.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업체들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 CEO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NEC, 후지쯔 등 일본의 5대 전기회사가 올들어 지난 9월까지 개최한 사장의 회견만 해도 27차례에 달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업의 개혁이미지를 시장에 심어주기 위해 사장들이 그토록 꺼리던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후지쯔의 아키구사 나오유키(秋草直之) 사장. 사업 통합과 업무제휴, 합자회사 설립 등 경영상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카메라 앞에 선 아키구사 사장은 올들어서만 벌써 8차례의 기자회견을 개최, 「홍보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같은 「회견 붐」을 타고 지난달 27일에는 지금껏 취임·퇴임회견을 제외하곤 한번도 사장의 공식 회견을 연 적이 없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업적예측치를 수정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발표한 내년도 경상손실 예측치는 350억엔. 지난 64년이후 첫 적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미쓰비시의 니시오카 쿄우(西丘喬) 사장은 『주주 여러분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사죄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 재계에선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영 악화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스스로 니시오카 사장이 기자회견을 연 사실 자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앞으로의 실적 개선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니시오카 사장의 이례적인 회견이 경영개혁 의지를 시장에 알리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다. NEC의 니시가키 고지(西垣浩司) 사장도 시장에 대한 메세지 전달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3월 부임 이래 벌써 7차례 기자회견을 가진 니시가키 사장은 지난 4월 NEC 사장으로서는 처음으로 IR(기업설명회)을 개최한데 이어 오는 11월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첫 해외 IR을 열기로 하는 등 「사장 홍보단」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대외 활동이 빈번해지면서 몇몇 사장들은 의상 연출에 부쩍 신경을 쓰는가 하면 효과적인 의사표현 방법을 익히기 위해 전문회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의 쇼우야마 에츠히코(庄山悅彦) 사장은 지난 4월 취임에 앞서 미디어 트레이닝 전문회사에서 효과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취임 당일 사내 방송용 촬영을 앞두고 전문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을 받기도 했으나, 『분홍색 와이셔츠만은 못입겠다』고 고집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기업 사장들의 「회견」전략이 당장 관심거리는 될 수 있어도 얼마나 시장에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기업들이 사장의 회견 내용대로 근본적인 변화의 길을 걸을지, 화려한 분장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늘어놓은 일장 연설이 「말잔치」로 끝나고 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신경립기자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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