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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올해 같은 여름은 처음입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오모(58)씨는 요즘 한숨만 나온다. 여름휴가 피크 기간이지만 방 10개를 갖춘 민박집 절반가량이 매일 빈방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씨는 특히 올여름 한철 장사를 겨냥해 도배 등 민박집 수리에 적잖은 비용을 투자했지만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매출에 밤잠을 설칠 정도다. 오씨는 "예년 이맘때면 웃돈을 주겠다고 해도 방이 없어 난리였는데 올해는 방값을 깎아줘도 손님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최대 여름 피서지인 해운대를 비롯한 전국의 유명 해수욕장에 피서객이 없어 난리다. 3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은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음에도 1.8㎞에 달하는 백사장에 해수욕을 즐기는 피서객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일 정도였다. 대신 주인 없는 1만여개의 비치파라솔만 백사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비치파라솔 영업을 하는 상인 김모씨는 "예년에는 평일 오후쯤이면 비치파라솔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며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해수욕객 수가 확 줄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평일뿐만이 아니다. 불볕더위가 찾아왔던 지난주 말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 수는 약 50만명으로 지난해 7월 마지막 주말(100만명)에 비해 무려 50%나 급감했다.
지난주 말이 사실상 이번 여름휴가의 피크 기간이 시작되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관광객 감소가 심각한 수준이다.
사정은 전국의 다른 유명 해수욕장들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말과 휴일 경포대 등 강원도 강릉 지역 해수욕장들의 피서객 수는 모두 94만5,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때의 117만9,000여명보다 20%(23만4,000명)나 줄었다. 지난 7월1일 개장 이후의 누적 피서객 수도 149만3,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1만4,000여명)보다 20만명 이상 감소했다. 충남의 대천 해수욕장도 올 들어 피서객 수가 30% 이상 줄어들었다. 피서객 감소는 인근 민박집 등 숙박업소와 상가 등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대천 해수욕장 인근 30여곳의 민박집들은 지난해의 경우 하루 10만원을 줘도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방값을 6만~7만원선으로 내렸는데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인근 횟집과 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해수욕객들이 줄다 보니 상가마다 지난해 여름철보다 매출이 30~40% 이상 주는 등 '피서 특수'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 4개 특급호텔들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대부분 8월 예약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J호텔 관계자는 "7월 객실 판매는 가까스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했으나 8월에는 5% 이상 예약이 준 상태"라고 밝혔다. 대천 해수욕장 인근 모텔들도 투숙객이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곳 H모텔 사장 "해수욕장 폐장일이 앞으로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손님이 없어 올해 장사는 사실상 끝났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국내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급감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경기침체에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가 위축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원화가치가 강세를 기록하면서 피서객들이 상대적으로 싼 해외여행으로 발길을 돌린 것도 국내 피서객 감소에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인천국제공항에는 해외에서 피서를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태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경우 강원도와 서해안보다 피서 비용이 다소 비싼 편이다. 이 때문에 동남아시아나 중국·일본 등지로 나가면 훨씬 저렴하게 피서를 즐길 수 있다. 모 여행사 관계자는 "요즘 환율을 감안하면 태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에 나가면 2~3년 전보다 30% 이상 싼 가격에 갔다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캠핑 인구의 증가로 계곡으로 피서객들이 몰리는 등 여행 패턴의 변화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