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댄 퍼잡스키의 첫 개인전이 열린 토탈미술관의 전시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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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스타는 단연 루마니아 국가관의 대표작가인 댄 퍼잡스키(51)였다. 일반적으로 그림이 걸리는 벽면 대신 그는 '바닥'을 택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깔린 작은 타일들을 퍼잡스키는 분필 드로잉으로 빼곡히 채웠다. 유명세를 타고 더 많은 관객이 방문할수록 밟히고 밟힌 그림은 '역설적으로' 희미해졌다. 이후 퍼잡스키는 2006년 영국의 국립미술관인 테이트모던, 2007년 뉴욕 모마(MoMA) 개인전 등으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퍼잡스키의 첫 국내 개인전이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12월4일까지 열린다. 통유리벽에 흰색 마카펜으로 그린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현대인, 커피전문점으로 꽉 찬 서울의 도시 풍경은 재치 있고 풍자적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퍼잡스키는 천부적인 예술 재능을 알아본 정부에 발탁돼 10살부터 영재 교육을 받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로 훈련받았다. 아이의 장난처럼 간략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그의 드로잉이 힘을 갖는 것은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퍼잡스키는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미술가로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어가게 된다. 벽화ㆍ그래피티(graffiti)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선 그는 키스 해링, 장 미셀 바스키아 등과 더불어 '낙서화가'의 대표작가로 꼽힌다. 특히 1991년 부카레스크의 반정부 신문인 '22'에 사회비판적인 삽화를 기고하면서 그의 정치비판적, 비상업적 활동은 시동을 걸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뉴스 애프터 더 뉴스'로 신문에 기고했던 그림과 신문 위에 낙서하듯 그린 드로잉을 고루 선보인다. 작가는 미술시장의 부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동시에 그 시장원리를 영리하게 이용할 줄도 안다. 1유로짜리 신문 100부를 구입해 그림을 그린 다음 에디션 100개짜리 작품으로 50유로씩 판매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처참한 전쟁과 기아 기사 하단에 명품광고가 실린 아이러니에서 착안한 신문 콜라주 작업, 신문에 실린 인물만 오려 모은 국내 미공개작 등이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전시의 핵심은 역시 낙서벽화.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삼는 작가는 미술관에 한국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세 달 이상 매주 한국의 소식을 받아 챙겼다. 벽화는 전시 개막 전에 방한해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완성했다. 한국의 분단상황, 높은 집값, 도시 난개발, 등록금 문제는 물론 한진중공업 사태까지 소재로 삼되 묵직함을 특유의 웃음으로 풀어놓았다. 자본주의를 뜻하는 'capitalism'의 a를 3개씩 겹쳐 쓴 것은 국가신용등급을 풍자한 것이며 'LIFE(인생)'에서 가운데 'IF(만약)'에 만 동그라미를 친 사색적인 그림도 있다. 이 작품들은 전시가 끝나면 흰색 페인트로 뒤덮여 사라진다. 작가는 "어떤 그림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만이 영원하다"라는 말로 대중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 작품의 '한시성'을 강조했다. 한편 미술관 한 켠에는 관객이 분필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검은 벽의 참여공간도 마련됐다. 미술관에 낙서를 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02)379-3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