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벨트'의 꿈과 현실] <4> 일본의 교훈

장기불황 뒤편엔 '테마파크' 있었다
지역균형 개발 등 명분 무분별한 투자 확대
90년대 거품 꺼지며 줄도산…경제에毒으로
L벨트도 日사례와 비슷, 타산지석 삼아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에 자리잡은 시가이어 테마파크. 이곳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94년 ‘관광 미야자키’의 부활을 내세우며 2,000억엔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퍼부어 화려한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부활의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가이어는 개장 후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99년 말에는 누적 적자가 1,115억엔을 넘었고 은행은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주민들이 시가이어를 살리겠다며 돈을 모으고 나섰지만 3,216억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하고 말았다. 결국 시가이어는 단돈 162억엔에 미국의 투자회사인 리플우드ㆍ홀딩사로 넘어갔다. 지자체 주민의 소중한 재산이던 시가이어는 이렇게 투자액의 10%도 안되는 돈으로 외국 투자가의 손에 넘어갔다. 도쿄 디즈니랜드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테마파크 하우스 텐보스. 시가이어의 망령은 몇 년 안돼 이곳에도 찾아왔다.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하우스 텐보스는 네덜란드 풍경을 재현, 전세계인들이 찾는 관광명소다. 그러나 이곳 역시 2003년 2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부채총액은 2,200억엔에 달했다. 곧이어 가마쿠라의 시네마월드도 같은 경로를 걸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요약되는 일본식 장기 경기불황. 80년대부터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촉발된 버블붕괴는 경제대국 일본에 지금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버블을 양산한 주범은 누구일까.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80년대 초반부터 관광산업 육성과 지역균형 개발을 목표로 앞다퉈 뛰어든 테마파크 등 레저시설을 그 요인 중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테마파크ㆍ골프장 등 대규모 레저시설 건설은 일본의 땅값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86~9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8%인 반면 땅값은 13.1%나 올랐다. 94년 말 기준으로 일본에 등록된 테마파크는 238개에 달했고 골프장은 2,400여개에 이르렀다. 수요 없는 무분별한 공급은 오래가지 않아 독(毒)으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경제가 바닥인 상황에서 부동산발(發) 버블은 맹독에 가까웠다. 전국 도처에 깔린 레저시설은 국민 경제에 곧바로 버블을 만들었고 이들이 장기불황의 곡선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블 때 엄청난 돈을 투자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레저시설은 5년도 안돼 도산의 길로 들어섰고 일본 경제의 체질도 급속하게 허약해졌다. 80년대 말부터 90년까지 문을 닫은 테마파크는 2곳. 국토를 파고든 버블의 맹독은 90년대 들어 급속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91년 2건에 이어 92년 4건, 96년 2건, 98년 1건 등 87년부터 2000년까지 11곳의 테마파크가 도산했다. 99년 기준으로 테마파크의 70% 이상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중 50%는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관광 일본의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테마파크는 이렇게 경제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말았다. 골프장은 어떤가. 버블 붕괴와 함께 골프장도 도산 대열에서 열외가 될 수 없었다. 일본의 골프장 도산 건수를 보면 96년 6건, 97년 8건, 98년 22건 등을 나타냈다. 2000년대 들어 문을 닫은 골프장은 더 늘어 2002년에는 109건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도 11월까지 73건에 이르렀다. 96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도산한 골프장은 407곳에 달한다. 일본 레저산업의 도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L벨트’ 사업은 일본이 테마파크 건설에 나섰던 초기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의 테마파크는 도쿄의 집중화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경제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도쿄 등 수도권에 경제ㆍ인구가 집중됐고 지방은 쇠퇴했다. 지역균형 개발이라는 명분은 공교롭게도 ‘L벨트’구상과 다르지 않다. 테마파크 등 레저산업을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지역종합보양정비법(리조트법)’을 제정, 레저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기반 아래 지자체들은 레저산업을 주도해나갔다. 우리의 ‘L벨트’ 역시 민간보다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총대를 메고 진행하고 있다. 중복 투자도 도산을 앞당긴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가 추진 중인 ‘L벨트’ 역시 한 집 건너 레저시설이 건립되는 등 벌써부터 중복 과잉투자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테마파크와 L벨트는 목적이나 동기면에서 비슷하다”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남해안을 관광 레저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담은 ‘L벨트’ 프로젝트. 우리보다 한발 앞서 비슷한 경로를 걸은 일본의 사례는 ‘L벨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 두고두고 곱씹어볼 흔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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