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까지 잔업을 할 때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그 동안 번 돈으로 회사를 차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인도네시아 출신 수나르토 무하마드)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배웠던 한국인의 성실성과 철저한 공사 구별 정신 등은 고향에서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군요.”(태국 출신의 소파 댕그남)
산업연수생 경험을 토대로 고국으로 돌아가 사업에 성공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중소기업주간행사’ 기간을 맞아 방한, 자신의 성공담을 소개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동시에 경영 노하우도 익혀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이룬 셈이다.
중국 산동성 출신의 류 디안 태(40)씨는 지난 2000년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입국했다. 그는 3년간 충남 연기군에 있는 한양사료에서 재직하다 귀국해 지금은 철광석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류 씨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 월급이 한국 돈으로 1만 5,000원 정도였지만 한국에서는 월급으로 83만원까지 받기도 했다”면서 “부지런히 저축한 덕택에 고향에 돌아 갈 때는 18만 위앤(약 2,4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돈으로 철광석 가공 공장을 설립했다. 류 씨는 특히 한국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근로자는 가족’이라는 자세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상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수나르토 무하마드(35)씨. 지난 95년부터 2년간 충북 음성에 있는 효인산업에서 일하면서 1,300만원을 모았다. 무하마드씨는 “옷 값을 아끼기 위해 한국인 동료들이 입다 버린 옷을 얻어 입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 덕분에 레스토랑 창업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상류층으로 변신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한 달에 원화를 기준으로 500만원 이상씩 벌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쑨코노(35)씨는 98년부터 2년간 근무하면서 1,300만원을 벌어 이 가운데 1,200만원을 송금했다. 그는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수입은 월 3만3,000원에 지나지 않았다. 가구점과 식당을 경영하는 쑨코노씨의 재산은 이제 1억원을 훨씬 넘는다.
태국 출신의 소파 댕그남(46)씨는 지난 96년부터 대구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중앙산업사에서 푼푼히 번 1,500만원으로 고국에 정미소를 차리고 축사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온갖 고생에도 그대로 주저 앉으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 끝에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파라리에브 자혼기르(30)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산업연수생으로 97년부터 2년여간 일하며 번 돈으로 고향에서 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 문제가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가능하면 자신이 처음에 몸 담은 회사에 정을 붙이고 지내는 게 최선”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