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개방 유예 조치가 올해 말 종료되는 가운데 정부가 쌀 관세화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쌀 개방 유예 종료까지 불과 9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쌀 관세화에 대한 결론조차 내지 못한 상황이어서 정부가 농민과 농촌 국회의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시간을 끌며 좌고우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쌀 관세화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는 그동안 쌀 관세화 문제를 두고 비공개적으로 실무급 회의를 가진 적은 있지만 차관 차원에서 관계부처 회의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내외 쌀 시장 동향과 관세화에 따른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농가 지원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쌀 관세화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쌀 시장 현황과 향후 일정 등을 공유하기 위한 회의"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까지 관세화 여부를 결론 내겠다고 했다가 올해 6월로 미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3년 '비관세 장벽 철폐'와 '예외 없는 관세화'를 규정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쌀에 대해서는 10년간 관세화를 유예 받았다. 대신 매년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의무를 지게 됐다. 이후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조치가 만료되자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대신 2014년까지 쌀 관세화를 재차 유예 받았다.
정부 안팎에서는 2015년부터는 쌀 관세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3번째 쌀 관세화 유예를 시도했다가 회원국의 반발에 부딪힌 필리핀의 사례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리는 조건을 내걸 수도 있으나 현재도 의무수입물량이 한 해 쌀 생산량의 10%에 이르는 40만8,000톤에 달해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만약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연 수입물량보다 의무량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는 쌀 관세화 여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올해 안에 관세화 여부를 결론 내겠다"고 공언했다가 철회했으며 지난 3월에야 "6월까지는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야 쌀 관세화를 공식화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WTO에 쌀 관세화 여부와 관세율을 통보해야 하는 시점이 불과 3개월 뒤인 9월인 점을 감안하면 너무 늦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쌀 관세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지방선거를 의식해 공식 발표를 미루는 것인데 농민 의견을 수렴하고 쌀 농가를 위한 대책을 내놓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