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國民연금, 窮民연금

이현우 논설위원

‘연금이 자식보다 낫다. 그러니 보험료를 잘 내자’는 컨셉트의 국민연금 TV광고를 볼 때마다 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연금제도에 문제가 많아 개혁해야 한다면서도 이를 알리려는 노력보다 ‘마냥 좋다’는 방향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홍보를 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특히 연금에 대한 불신이 점점 부풀고 있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직장인들 사이에 연금이 화제에 오르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못 받는다는데 뭐…’라는 것이다.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될법한 40대들조차 그렇다. 봉급명세표에서 가장 아까운 공제항목으로 국민연금을 꼽은 직장인이 73%나 됐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불신과 불만의 강도가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父子세대간 연금싸움 일어날 판 불신의 근원은 재원고갈 우려다. 연금재정은 오는 2036년부터 적자, 2047년에 완전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제도 자체가 조금 내고 많이 받도록 만들어진데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열심히 내봤자 받는 돈은 담뱃값 정도이거나 아예 못 받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래와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걱정거리다. 자연 수명과 ‘사회적 수명’의 반비례 현상으로 그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작년 기준 국민들의 평균수명은 77세로 11년 전에 비해 5.3년 늘어났다. 반면 각 분야에서 효율성이 중시되면서 사회적 수명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사오정ㆍ오륙도라는 말에서 보듯 정년퇴직자가 천연기념물처럼 돼버렸다. 노후는 길어지는 반면 그에 대비할 경제활동 기간은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장수는 모든 인간의 소망이지만 노후에 기초생활조차 힘든 장수는 축복일 수 없다. 특히 국가적으로는 재앙일 수 있다. 노후생활의 최후보루인 연금의 불안은 그래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간다면 국민연금은 모두를 궁하게 만드는 ‘궁민(窮民)연금’이 될 수밖에 없다. 수급세대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보험료를 내는 세대는 부담증가로 등골이 휘어질 판이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하며 갈등과 전쟁을 벌이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내가 편하자고 아들세대에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을 안기는 것은 몰염치한 행위이며 더 나아가 죄를 짓는 일이다. 연금개혁을 미룰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死卽生의 각오로 국민설득 나서야 그러나 문제를 풀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미적거리고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정부안은 3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여야 각 정당이 수급액만 줄이는 방안, 기초연금제 등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하는 등 움직이고는 있지만 시늉일 뿐 진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서의 표 계산 때문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것을 좋아할 국민이 많지 않으니 먼저 나서서 화를 자초하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정부는 정치권 핑계를 대고 여야는 상대방 탓을 하며 시간끌 일이 아니다. 내년부터 지방선거ㆍ대선ㆍ총선 등이 줄줄이 이어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은 어려워진다. 연금문제 해결의 첫걸음이자 핵심과제는 국민의 불신해소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제도의 문제점과 실상부터 정확히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내고 덜 내는 길이 최선이라면 그 불가피성을 호소해야 한다. 이게 말과는 달리 쉽지 않은 일이기에 모든 것을 던진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 표를 안 줘도, 자리에서 물러나라 해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싫다면 최소한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라도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연금문제는 쉬쉬해서는 될 일이 아니며 오히려 한바탕 격론의 홍역을 치러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살 길을 먼저 생각하면 반드시 죽게 되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길이 열린다고 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특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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