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엔 회생 절차가 오히려 독?

국세 못내면 정부발주 공사대금 못받아 자금난 악화
보증대상서 제외돼 공사수주도 어려워 정상화 '먼길'


법원에서 회생 절차를 진행 중인 중견건설업체 J사의 자금 관련 임원은 회생 절차 인가 이후 정부기관에서 공사비를 받기 위해 국세청을 찾아가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주요 업무가 됐다. 정부공사에서 중간에 대금을 받기 위해서는 국세청이 발급하는 국세완납증명서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발주기관에서는 공사비를 받기 위해서 밀린 국세를 다 냈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라 하고, 국세청에서는 세금을 일단 다 내야 증명서를 주겠다고 한다"며 "돈이 없으니 세금도 못 내고, 세금을 못 내니 공사비를 못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임원은 "당연히 세금은 내야 하지만 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두 기관의 요구를 모두 맞추기 어렵다"며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공사를 하고 제때 못 받고 있는 돈이 지금도 수십억 원이 넘는다"고 토로했다.

자금 사정 악화로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건설사들이 국세와 보증 문제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건설사들은 채무를 감면해주는 등 채권자들의 양보와 희생을 통해 어렵사리 회생 기회를 잡았지만 정작 국세청이나 공사발주 정부기관, 보증업체들이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면서 공사 수주나 자금 확보가 어려워져 자금사정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26일 중앙지방법원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기업이 회생 절차에 돌입할 때 부가세나 법인세, 지방세 같은 국세의 경우 임금이나 벌금, 과태료 등과 함께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별도의 감면 없이 전액 변제 대상으로 남게 된다.

건설업체는 이때 남아있는 국세 완납 부담이 건설업체의 자금회수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건설사들은 현재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서 원도급업체로부터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정부 기관에 이를 요청해 먼저 받고 있는데 정부 기관은 이때 대금을 주는 조건으로 국세완납증명서 제출을 요청한다. 국세청과 협의해 세금 내는 시기를 미루는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5,000만 원이 넘어가면 담보제공이나 다른 조건 등에 걸려 이용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회생 절차 중인 한 건설사 관리인은 "법정관리 상태인 회사는 대부분 국세를 미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 때 대금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세뿐 아니라 회생 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각종 보증 대상에서 제외돼 아예 수주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공사 발주처는 이행보증이나 하자보수 보증 등 각종 보증 서류를 수주에 참여하는 건설사에 요구하는데, 보증업체들은 회생 절차에 있는 건설사들에는 보증 서류 발급 자체를 거부한다"며 "영업이나 수주를 해서 회생 계획안에 따라 채무를 갚아나가는 것인데, 수주 자격을 확보하는 데부터 막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업체 관리인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채권자와 이해관계자들이 고통 분담을 하고 있는데 세금이나 보증 문제가 오히려 회생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라며 "국세청이나 국가기관들의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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