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 벤처'의 상징인 팬택이 청산 직전에 국내 중소기업과 인수합병(M&A)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청산의 문턱에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는 안도감보다는 또 한 번의 희망고문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다. 인수의사를 밝혔다가 발을 빼거나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전례가 있어 실제 본계약 체결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파산부(재판장 윤준 파산수석부장판사)는 16일 옵티스 컨소시엄과 팬택의 M&A 양해각서 체결을 허가해 이날 팬택 관리인과 컨소시엄이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옵티스 컨소시엄은 다음 달 17일까지 팬택을 실사하고, 법원은 컨소시엄의 실제 자금조달 능력과 경영 능력 등을 평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컨소시엄이 이미 실사를 시작했고 인수금액 400억 원의 5%인 20억 원을 이날 계약금으로 납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옵티스 컨소시엄은 광학기기업체인 옵티스와 미국에 본사를 둔 이엠피 인프라의 아시아 지역 법인인 이엠피인프라 아시아 주식회사로 구성된 연합체다. 옵티스는 광디스크 저장장치(ODD)와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지난해 매출액 5,995억원에 영업이익 15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에는 삼성이 도시바와 합작해 만든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러지를 청산할 때 이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엠피인프라는 전 세계 인프라 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영하는 업체다.
옵티스 컨소시엄의 인수 가능성에 대해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총 3차례의 매각 시도가 불발된 뒤 꺼져가던 팬택의 회생 불씨를 살렸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인수주체의 자금력과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초 팬택 인수의사를 밝혔다가 매각 대금도 납입하지 않고 발을 뺀 원밸류에셋 컨소시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옵티스의 1대 주주가 코에프시스카이레이크그로챔프(22.46%)라는 사모펀드로 이 펀드의 운용사가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라는 점을 주목한다. 진대제 전 삼성전자 대표가 맡고 있는 운용사로 팬택 인수에 진 대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관심이다.
한편 옵티스 측이 팬택 직원 300명을 인도네시아로 데려가 저가 스마트폰을 제조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팬택 영업직원들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팬택을) 사겠다는 업체가 나타난 것은 반갑지만, 실제 매각이 성사되기까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