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부디 좋은곳으로 가거라"
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노원구 공릉동 벽운사.
이 곳에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있는 추모의식이 있었다. 낙태ㆍ유산 영가(靈駕ㆍ영혼을 의미) 위령재(齋)가 열린 것이다.
낙태와 유산으로 뱃속의 아기를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마음의 앙금을 씻고 죄를 뉘우치기 위해 이날 위령재에 참여했다.
위령재에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ㆍ인천ㆍ천안ㆍ의정부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수십명의 부모들로 성황을 이뤘다.
연령대도 다양해 30대 초반의 여성부터 환갑이 넘은 초로의 할아버지까지 많은이들이 참여했다.
특히 이날은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두고 열린 것이어서 더욱 아이를 낳지 못한 데대한 회한과 후회스러움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위령재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보시(布施)로 분유ㆍ우유ㆍ과자ㆍ배냇저고리 등을 제사상에 올렸다.
이 의식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시대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우리 딸이 컸으면 16살 정도가 되었을 거예요. 딸 둘을 낳고 셋째도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시댁에서도 권했고 결국 아이를 지우게 됐어요. 그런데 아이가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거예요. 어찌나 미안하고 후회스럽던지…" 서울 노원구에 사는 이모(38ㆍ여)씨는 "딸이어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셋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참가한 사람들의 사연들도 다양했다.
인천에 사는 변모(50ㆍ남)씨는 "총각 시절 애인과 원치않는 임신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지우게 됐지만 평생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이 절에서 위령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참가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위령재에 참여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하늘에 있을 아이에 대한 짐을 덜게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한 주부(56)는 "젊을 때 약을 잘못 먹어서 본의 아니게 수술을 했지만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29살 정도 되었을 것"이라며 "임신해서 몸 관리를 잘못했던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이정애(46ㆍ여)씨는 "위로 아들ㆍ딸을 낳고 셋째를 갖게 되자 형편이 어려워 셋째를 지웠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기 영가에 대한 `천도 발원문'을 읽으면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태아 영가에게 진심으로 참회하는 엄마 아빠 함께 발원합니다"로 시작하는 이발원문에는 "이런 저런 인연이며 핑계댈 일 많지만은/ 지극참회 발원하면 못 이룰일무엇일까/ 살기 힘든 시절세상 무지하여 저지른일 지금다시 돌아보아 참회 발원 하옵소서/ 아이들아 미안하다 정말정말 미안하다/ 어서어서 찾아가라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품안으로"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이들이 참회의의미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불교에서 49재란 죽은 영혼의 왕생극락을 위해 7일마다 재를 올림으로써 죽은이가 불법을 깨닫고 내세에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의식.
낙태ㆍ유산 영가 위령재는 태아의 영혼도 하나의 인격체이자 생명으로 인정해죽은 어른에 대한 49재와 같은 형식으로 아기의 영혼을 달래고자 올해 두번째로 마련됐다.
벽운사 주지 지산 스님은 "한 신도가 보여준 태아 초음파 사진에서 태아도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해 낙태아만을 위한 이같은 위령재를 마련했다"면서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라도 부모가 참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태아가 좋은 곳으로갈 수 있도록 빌어줘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스님은 "불교적인 형식으로 의식을 행하지만 낙태와 유산은 큰 죄라는 인식을확산시킴으로서 종교를 초월해 마음의 멍에를 없애고 낙태는 죄라는 인식의 변화가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천도재는 4일 시작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에 벽운사(☎02-979-0108)에서 6월22일까지 계속된다.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