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두자 금융감독원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실적 호조를 반겨야 할 감독당국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감원은 지난달 저축은행들의 적기시정조치 기준이 되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4%에서 5%로 올리기로 했던 방침을 1년간 유예시켰다. 감독이 허술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금감원측은 “소액신용대출로 업계의 부실이 커져 BIS비율을 5%로 높이면 상당수의 저축은행이 퇴출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결산 결과 우려했던 바와 달리 업계는 지난 회계연도(2002.7~2003.6)에 전년대비 약 400억원 이상 이익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어려움을 호소하며 금감원의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던 저축은행 사장단과 중앙회의 `엄살`에 감독당국의 판단이 혼선을 일으킨 셈이다.
여기에 굿머니와 굿모닝시티 등 최근 터진 각종 금융사고에 저축은행들이 연루되면서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을 완화시켜준 금감원의 입장은 더욱 난처하게 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결산에 대한 회계감사가 마무리되면 대손충당금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뒤늦게 감독의 고삐를 죄는 시늉을 하고 있다.
물론 원활한 시장 흐름을 위해 유연하게 정책을 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별 저축은행들의 손익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업계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감독기준을 고친 것은 성급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한 저축은행 사장은 “일부 힘있는 저축은행들과 그들에게 좌지우지되는 중앙회의 논리가 감독당국의 정책방향마저 움직인 결과가 됐다”며 “저축은행에 대한 예금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일관된 감독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은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봐주는 정책이 아니라 건전성 기준을 강화해 예금자들이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금융기관으로 키우는 것이다.
<최원정기자(경제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