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식씨 南동생 봉식씨 "꼭 만날줄 알았다" 감회죽음을 각오한 48시간의 항해였다.
6∼7명의 선원이 타도 비좁을 길이 20m, 폭 4m짜리 20톤급 목선에는 모두 21명이 조타실, 선실, 어획물을 보관하는 어창까지 옹기종기 타고 있었다.
인천해양경찰서 119경비정(100톤)이 푸른 빛이 감도는 목선을 발견한 것은 18일 오후 6시30분. 인천 덕적도 인근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에서 해상 경비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해양경찰관 들이 정체불명의 목선에 서서히 접근하자 해경 경비정을 향해 "북에서 왔다.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선장 순룡범(46)씨의 외침이 또렷이 들려왔다.
이후 해경은 선장과 기관장 리경성(33)씨를 목선에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을 경비정에 옮겨 태운 뒤 목선을 인천해경부두로 예인 하기 시작했다.
인천 옹진군 울도~덕적도~팔미도 앞바다 등을 거쳐 순항한 이배에 타고 있던 탈북자들은 19일 오전4시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남쪽 땅을 밟았다. 17일 오전 4시 평안북도 선천군 홍건도 포구를 떠난지 48시간만의 꿈같은 일이었다.
한편 탈북한 순종식(69)씨의 남한 동생 봉식(55ㆍ대전시 중구 선화동)씨는 형님 가족의 탈북 소식이 믿기 지 않는 듯 "힘든 줄 알았지만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줄 알았다"며 첫 소감을 밝혔다.
봉식씨는 이어 "지난 95년 서신을 통해 형님과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후 2000년 12월 중국 단동시 부근에서 3일간 형님과 장조카 용범씨를 직접 만났다"고 밝혔다.
순씨 가족이 생이별을 해야 했던 것은 6.25 한국전쟁 당시 18살이던 종식씨가 북한 의용군에 끌려가면서부터 였다. 순씨의 가족은 부친 순완영(작고), 모친 이영순(작고) 사이에 종식(69ㆍ탈북자)씨와 남한에 동식(61ㆍ충남 홍성), 동례(57ㆍ여ㆍ대전시 대흥동), 봉식(55ㆍ대전시 선화동), 대식(52ㆍ인천시 검단동)씨가 생존해 있다.
김인환기자
박희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