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업무의 스피드화에 나선 데는 이건희 회장의 유럽 출장이 크게 작용했다. 이 회장은 5월 유럽 출장 후 삼성 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위기의식'을 주문했고 그 결과로 하나둘 나타나는 것은 '삼성에 스피드를 입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런던올림픽 이후 현지에서 경영구상에 들어간다. 이 회장이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에 그룹 차원의 중대 변화가 뒤따랐다는 점에서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박태환 선수 수영경기 등 한국 선수들의 주요 경기를 응원하는 것으로 런던올림픽 일정을 마무리 지었지만 귀국하지 않고 유럽에 당분간 더 머무를 예정이다. 애초 이 회장은 22일 출국한 후 24일 국제올림픽위위회(IOC) 총회와 27일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공식 일정을 예정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와 관련, "런던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된 상태지만 바로 귀국하지는 않는다"며 "공식 일정은 없으며 유럽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5월에도 4주간의 일정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에서 경기가 가장 어려운 나라 3~4곳을 둘러보면서 현지 상황을 직접 확인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유럽에 머물면서 이 회장은 현지 유럽의 지인들은 물론 주요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및 회장을 면담하고 경기 상황 등을 직접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5월에 이어 8월에도 유럽 현지를 둘러보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번 유럽 일정을 단순히 올림픽 일정을 소화하는 의미를 넘어 새로운 경영구상을 위한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12월1일 삼성 회장 취임 25주년을 앞두고 특별한 구상을 발표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해외출장이 잦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1년에 두 차례나 유럽에 들러 경영인들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이 본인의 출근시간을 오전6시30분께로 앞당긴 것도 삼성 전체에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기회로 삼겠다는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이 회장은 그동안 그룹 차원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앞서 경영구상을 가다듬는 장소로 유럽을 활용해왔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당시 사장단 200명을 현지로 긴급 호출해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지시로 함축되는 삼성의 신경영 방식이 바로 당시 유럽에서 탄생했다. 2005년에도 이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둘러본 후 이듬해 '디자인 경영'을 지시하기도 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이 회장이 5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삼성그룹에는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의 수장을 교체하는 변화가 뒤따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