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환율 흐름이 주식 시장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30.60원에 거래를 마감해 올 들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최근 들어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원화 강세는 견조한 경상수지 흑자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작년 10월 올해 경상수지 흑자를 450억달러로 전망했으나 올해 1월에는 550억달러, 지난 4월에는 680억달러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에 당초 시장 전문가들이 저점으로 인식했던 원·달러 환율 1,050원선은 이미 깨졌으며, 단기간 내 1,030원선마저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와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당분간 원화 강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더 하락(원화 가치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주식전략팀 이사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부양책 미제시(유로화 강세), 일본은행(BOJ)의 부양책 미제시(엔화 강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초저금리 유지(달러 약세)가 결합된 전반적인 달러화 약세 기조가 5월 내에 뒤바뀌기는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1,000~1,040원 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비슷한 견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단기적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은 3·4분기나 올 연말께 1,000~1,02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국내 경기 회복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으로 원·달러 환율 1,000원선은 지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화 강세는 한국에 대한 투자매력 부활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출주에 부담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라며 "원화 강세는 경기에 민감한 대형주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심리 개선을 이끄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외국인들이 달러로 환산한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원화 강세 국면에서 순매수에 나섰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외국인은 달러 환산 순익이 증가하는 구간에서 순매수를 크게 늘렸다"며 "1·4분기에는 실적 모멘텀 회복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는 외국인들의 순매수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 연구원은 특히 "원·달러 환율이 5년래 저점이 깨졌다는 점에서 원화의 추가 강세를 예상해 외국인 자금이 더 유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을 하회하면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나타났던 2005~2007년과 달리 현재 코스피의 가격 메리트가 높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환율 하락은 국내 달러화 수급의 개선, 즉 해외에서 국내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국내 주식 시장의 상승은 환율 하락과 동반해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한금융투자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12년 7월 2월 원·달러 환율이 1,151.9원에서 2013년 1월 14일 1,056.5원으로 하락하는 동안 외국인 누적 순매수 규모는 19조 2,000억원에서 30조 2,000억원으로 늘었으며, 지난해 7월~올해 1월 원화 강세가 지속되던 시기에도 비슷한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추세적으로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다만 원화 강세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노종원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 비해 원화 강세가 한국 기업들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실제 이익 측면에서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노 연구원은 또 "과거 외국인 자금의 유입을 살펴보더라도 원화 강세 시 추세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던 경우는 2003~2007년과 2009~2011년 두 번 있었는데 그 당시는 중국 경기가 좋아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잘나가던 시절이었다"며 "지금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원화 강세에 따른 수혜 종목에 대해서도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대다수의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원화 강세 국면에서 원가 절감과 손인 개선으로 이익 증가가 나타나는 음식료·철강·유틸리티 등 내수 업종을 추천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전통적인 원화강세 수혜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유통과 같은 내수주, 은행, 운송 및 여행, 그리고 외화부채가 많거나 중간재 및 소재 수입 비중이 높은 유틸리티, 철강 등이 원화 강세국면에서 지속성 있는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최근 들어 외국인들의 자금 유입이 계속됐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이 오른 내수주보다는 정보통신(IT)·자동차 등 수출주 중심의 투자전략이 바람직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류주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의 원화 강세는 3월말 이후 진행된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순매수의 영향이 크다"며 "이를 감안하면 펀더멘털 관점에서 원화 강세 수혜주로 분류되는 유틸리티, 음식료·정유 업종의 수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류 연구원은 또 "원화 강세의 근본적인 이유가 수출 호조와 그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따라서 내수 업종보다는 IT·자동차 등 수출주 중심의 투자전략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봤다. 실제 최근에는 원화 강세 국면에서도 외국인들이 자동차주를 사들이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6월 26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원화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 외국인들은 자동차 업종에 대한 지분을 오히려 3.1% 늘렸다.
자동차 업종의 경우 최근 원화 강세로 인해 단기 하락한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이 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지형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단기 바닥을 확인했으며,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해외생산 비중 증가, 비용 통제 효과, 원재료 수입 헤지 효과 등으로 원화 강세에 따른 자동차 업종의 민감도는 과거 대비 축소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최근 국내 자동차 업황은 제품 가격 경쟁 측면보다는 신차사이클, 도요타·GM의 리콜 이슈 등으로 인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수급적인 측면에서도 최근 외국인의 자동차 비중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