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금융인오찬] 금융계의 태도변화 강력 촉구

『국민의 정부는 정말 단호한 결심으로 개혁을 늦추거나 봐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금융계 여러분들도 재벌개혁 문제에 대해 독한 마음을 갖고 해달라.』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4일 금융인들과의 오찬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독한」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금융계 인사들과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며 금융계의 대출행태 개선과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 재벌개혁 등을 역설했다. 감기에 걸린 金대통령은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거듭 질책과 격려를 번갈아가며 금융계의 태도변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다음은 이날 金대통령의 발언 요지. 『지금까지 금융계가 큰 고통을 겪고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다. 구조조정한 사람도 가슴이 아팠고 당한 분들도 기가 막힌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이 꼴이 되어서 다시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금융계는 정말로 새로 태어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은행이 우리나라 경제의 운명을 좌우한다. 과거에는 공업이나 무역같은 것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이제는 금융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금융계가 소신을 갖고 해야 한다. 과거에는 대기업에만 자금을 공급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신용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서 돈을 많이 주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경제기반이 튼튼해지고 직장이 많이 생겨 실업문제가 해결된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중산층이 튼튼해지고 사회가 안정된다. 신문에 보니 빈부 양극화현상이 많이 얘기되는데 정말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중소기업 대출은 그것이 하나의 애국이고 은행으로서는 임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같이 부동산을 잡고 전당포같이 돈을 빌려주는 그런 행태는 그만해야 한다. 그 부동산가격이 폭락해 은행이 큰 피해를 보고 그게 정부로 넘어와 막대한 돈으로 부실채권을 해결하고 있다. 철저히 신용조사를 해서 앉아서 부동산등기를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어느 기업이 정말로 창의적이고 세계시장에서 가장 좋고 싼 물건을 만드는 기업인지 알아서 돈을 쓰라고 권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업이 예정된 데에 돈을 쓰고 다른데 돈을 빼돌리지 못하게 감시하면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마치 시혜적으로 봐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월급주고 유지하는 것 아니냐. 돈을 빌려가는 사람이 고객이다. 나도 과거에 사업을 해보았지만 은행이 마치 공무원이나 관청같은 입장에서 그런 태도를 보여왔다. 은행은 아주 저자세로 기업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기업이 잘 돼야 은행이 잘된다. 기업 재무구조, 원가계산 등이 철저히 잘돼도록 요구하고 체질을 개선하도록 돈을 대주면서 성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갖고 부실대출의 뒷치닥거리를 하고 있다.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해야 한다. 대출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이 되도록 유도해서 국민에게 보답해야 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5대재벌 개혁에 관해 얘기하겠다.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 발전한 데는 5대재벌의 공이 컸다. 그러나 이렇게 잘못된 데에도 5대재벌의 책임이 크다. 또 한보대출에서 보여주듯이 은행책임도 크다. 5대재벌과 다섯가지를 합의했다. 그런데 문어발식 기업을 정리해서 경쟁력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퇴출정리하는 것이 안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말이 많다. 세계에서 한국의 개혁이 잘되고 있는데 5대재벌에 걸려 개혁이 성공이냐, 실패냐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IMF상황 속에서도 5대재벌은 더 비대해지고 나머지 기업들은 몰락하고 있다. 그래서 불만이 더 쌓이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단호한 정말로 단호한 결심으로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한 개혁을 늦추거나 봐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금융계 여러분들도 이제부터는 이 문제에 대해 독한 마음을 갖고 해달라. 5대재벌을 미워하지 않는다. 5대재벌이 자기들 이익만 생각한다면 우리 경제는 무너진다. 이번 연말까지는 반드시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재벌들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금융계 여러분들이 특단의 협력을 해주어야 한다. 5대재벌 개혁을 철저히 해서 다른 개도국과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국에 투자가 몰려오고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는다. 다른 나라와 똑같이 우물쭈물 세월만 보내다 보면 제2의 외환위기가 오고 경제위기가 온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분노와 절망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과거의 관치금융,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을 생각해볼 때 이제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국민의 정부 아래서는 절대로 과거와 같이 돼서는 안된다.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라 말라 하지 않는다. 이권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어느 기업이나 재벌을 특별히 봐줘야 할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다. 재벌들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 경쟁력있는 기업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부는 직접 개입하지 않고 은행이 권한을 갖고 처리해야 한다. 다시 한번 약속한다. 첫째, 은행 인사에 절대로 간여하지 않는다. 둘째, 대출을 지시하거나 부탁하지 않는다. 다만 은행의 건전성에 대해 감독하고 그것도 법에 의해서 한다. 이것은 정부의 의무이고 권한이다. 철저히 해나가겠다. 금융경색이 빨리 풀려야 경기도 좋아진다. 여러분도 협조해야 하고 정부와 한국은행도 노력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살아나야 우리 경제가 산다. 은행은 21세기 지식정보산업시대의 꽃이다. 대처수상이 영국을 금융중심지로 만들었듯이 여러분들이 우리나라를 금융중심지로 만들어달라. 【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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