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청문회…" 정책추진의지 실종
[무기력한 공직사회 이대론 안된다] (중) 문제점
환란 이후 공직사회에 번진 가장 큰 현상은 '청문회 증후군'이다.
자칫 잘못하면 청문회에 불려갈 것이라는 두려움과 다른 한편 으로는 "잘해봐야 증인밖에 더 되겠느냐"는 자조가 공직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8일부터 실시된 공적자금 국정조사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이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원인도 따지고 보면 관치금융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청문회 증후군은 다른 한편으로 공무원들의 '정책추진의지 부족'을 낳았다. 투명성·객관성·공정성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정부부처의 정책목표와 추진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IMT-2000 사업자선정 문제. 정보통신부는 당초 업계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가 모두 비동기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기술표준협의회를 급조, 동기식 1개 업체, 비동기식 2개 업체의 기술표준을 강제했다.
그것도 지난해 9월 말 사업자 신청을 불과 한달 남짓 남겨놓고 9월 초 기술표준협의회를 만들어 이 같은 정부방침을 정하고 10월 말로 신청시한을 연기한 것이다.
그러나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무리한 정책추진은 결국 동기식 사업자선정 실패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정통부가 과거 PCS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잡음을 의식, 지나치게 객관성·공정성을 의식하다 보니 업계나 기술 발전보다는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행태가 두드러졌다"고 비판했다.
결국 청문회를 의식해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한 공무원의 정책의지·주관이 실종된 셈이다.
청문회 증후군은 다른 쪽에서 '페이퍼리스(paperless) 행정 논란'을 낳았다. 이는 은행퇴출 등 민감한 현안을 담당하는 금감위등 관련당국이 혹시 청문회의 증거가 될지 모를 서류를 가급적 기피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직사회가 정치권에 휘둘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또 장관이 수시로 바뀌면서 정책 일관성이 사라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난해 4·13총선 전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연내 강제적인 은행합병은 없다"고 말했다. 또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감자는 없다"며 "추가 공적자금 조성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은행 자율의 형식을 밟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추진의지를 바탕으로 연내 은행합병이 있었고 추가 공적자금 조성도, 공적자금 투입은행 감자도 모두 이뤄졌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장관이 바뀌면 다른 소리를 하는 바람에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의 경기침체와 관련, "올초까지 구조조정이 끝나면 하반기 이후 우리 경제가 정상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신뢰하는 곳은 많지 않다. 또 다시 정부가 '양치기 목동'이 될 것이란 얘기다.
결국 청문회 증후군과 공직사회의 중립성 훼손은 공무원들의 좌절로 나타나고 이는 다시 공직사회의 무기력증, 눈치보기 극대화로 귀결되고 있다.
/안의식기자 esa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