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래 동화, 세계 시장서 겨룰 훌륭한 소재"

'쿵푸팬더' 한국인 스태프 제니퍼 여 넬슨·전용덕씨 내한 기자회견


"한국 전래 동화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소재입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스토리 총책임자인 제니퍼 여 넬슨(36)씨와 레이아웃 총책임자인 전용덕(37)씨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내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용덕씨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을 재패할 수 있었던 이유로 "드림웍스의 가장 큰 강점이 재능있는 사람들을 최고로 대우해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장비나 테크닉은 그 다음이다. 제프리 카첸버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탤런트'다"라고 말했다. 제니퍼 여 넬슨씨는 "'쿵푸팬더'를 만들며 중국의 소림사나 쿵푸에 대한 역사를 존중하고 경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만들었다. 단지 쿵푸를 서양 버전으로 만들겠다는 얕은 마음은 없었다. 또한 '쿵푸팬더'의 예처럼 한국적인 소재도 충분히 세계 시장에 내놓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쿵푸를 연마해 무림 세계와 마을을 지키는 팬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쿵푸팬더'는 안젤리나 졸리와 잭 블랙, 더스틴 호프만, 성룡 등의 목소리 연기와 재기발랄한 스토리로 올해 칸느 영화제에서도 크게 관심을 모은 애니메이션. 제니퍼 여 넬슨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이민해 롱비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신밧드', '마다가스카' 등의 스토리 아티스트를 거쳐 '쿵푸팬더'의 스토리 총책임자에 올랐다. 전용덕씨는 서울 중동고와 서울시립대를 졸업하고 금강기획을 거쳐 뉴욕의 버추얼 아트 학교를 졸업한 뒤 드림웍스에 입사해 레이아웃 총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다음은 이들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 한국 출신으로 미국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수석 스태프에 오른 과정이 궁금하다. ▲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금강기획을 다녔다. 3년 지나면 대리, 또 4년 지나면 과장이 되는 직제가 왠지 부담스러워 고민하던 중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마침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붐이 일 때여서 월트 디즈니에 가서 애니메이터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대략 레이아웃 아티스트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을 고민하다가 레이아웃을 하는 방향으로 길을 정했다. 이후 무수한 포트폴리오를 여러 회사에 보냈고 드림웍스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드림웍스는 무엇보다도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다. 연차나 직급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입사하고 겨우 2년 반 후에 팀장에 오른 나를 보면 그 점이 잘 드러나지 않나. (전용덕) - 중국의 쿵푸나 소림사를 주요 소재로 이용한 '쿵푸 팬더'의 스토리 구상 과정이 궁금하다. ▲ 우리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소림사와 쿵푸의 역사를 매우 존중했다. 관련 영화도 많이 봤고 그러한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지도 연구했다. 그리고 그런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단순히 쿵푸를 서양 버전으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니다. 비주얼에서도 소림 철학이 반영되도록 했다. 팬더 포가 사부와 갖는 관계에서도 동양적인 정신이 반영되도록 했다. 물론 역사적인 드라마가 아니고 코미디 영화지만 동양 정신을 담았다. 보통의 서양 영화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고 성공하면 고급차와 여자를 얻는 경로를 따르지 않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외부의 환경만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다. 내면을 바라보지 않으면 겸손함과 희생을 모르면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제니퍼 여 넬슨) - 미국 관계자들이 보는 한국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 드림웍스 내의 주위 친구들이나 팀장들을 보면 한국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없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 등이 유명하다. 다들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특이하다는 반응도 보인다. 나에게 한국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한국 영화 산업이 매우 밝다고 말한다. 또 드림웍스 내에도 한국 출신 직원이 늘고 있다. 한국인들의 손재주나 성실성이 인정 받는다. 또 이들은 팀 내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한 번은 회사 내의 극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를 상영한 적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 비주얼 퀄리티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스토리는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려면 여기 있는 제니퍼씨 같은 분들이 한국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 혹 이런 분들이 많은데 재능을 빛내지 못하고 있다면 많이 발둘되야 한다고 본다. (전용덕) - 쿵푸팬더의 제작 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는데 과정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나오는데 5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다. 우선 '쿵푸팬더'는 소수로 이뤄진 그룹에서 시작됐다. 캐릭터와 블-- 개발로 시작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가를 정하는데 1년 반을 보냈다. 뭘 보여줄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캐릭터가 어떤 성격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끝나고 애니메이션 작업이 시작되고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하려면 몇 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소 5년은 되야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제니퍼 여 넬슨) - '쿵푸팬더'는 중국의 고유 문화를 소재로 세계의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할 매력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문화 중 세계 시장에 내놓을 소재를 고른다면? ▲ 한국에는 훌륭한 전래 동화들이 많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왔으니 얼마나 많은가. 미국이나 아일랜드의 전래 동화들은 이미 세계에 너무 널리 알려졌지만 한국 전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서 오히려 애니메이션 소재로 매우 훌륭하다. (제니퍼 여 넬슨) -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의 흥행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사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제작되는데 5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스토리 하나를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다. 이번에 '쿵푸팬더'를 2년 반 동안 레이아웃하면서 한 번도 야근을 해 본 적이 없다. 9시 30분에 출근해 12시에 점심을 먹고 1시부터 7시까지 2년 반 동안 그렇게 일했다. 주말은 물론 휴무다. 드림웍스는 아티스트의 건강과 이들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생각하고 만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본다. (전용덕) - '쿵푸 팬더'의 소림 권법을 보면 태권도의 절도 있는 동작들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 태권도가 어느 정도 무술에 녹아났다는 것은 사실이다. '쿵푸팬더'의 애니메이션 팀장이 프랑스인인데 그 친구가 무예 경력만 20년이다. 그 중 태권도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태권도를 배운 그 친구의 경험이 작품에도 녹아들었을 거라 본다. (전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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