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함에 따라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경영체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래 경영구도에 대해서는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당분간은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집단협의체제로 운영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에게 경영권이 승계될 것이라는 관측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시적이라고는 해도 집단협의체제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어렵고 그룹 전체의 힘을 한데 모아 이끌어가는 핵심 리더십의 공백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부회장은 22일 발표한 쇄신안에서 “이 회장 퇴진 후에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경우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며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서비스를 전담하는 소규모(임원 2~3명) 업무지원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룹 내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삼성그룹을 대표하게 된 것은 삼성생명이 순환출자에서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의 고리를 잇는 핵심 계열사이기 때문이지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체제는 이수빈 회장이 일정기간 사장단협의회를 이끌며 집단협의체제로 운영되다가 이 전무의 경영수업이 끝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전무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떳떳하게 경영권을 승계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과도기적 체제일 뿐”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는 했지만 대규모 투자나 핵심 인사 등에서는 여전히 입김이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끄는 과도기적 집단협의체제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장단협의회는 이 회장 및 전략기획실의 역할을 대신해 그룹의 중장기 전략 수립이나 대규모 투자, 계열사 간 신규사업 진출 등을 조율하고 각 계열사 경영은 최대한 자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학수 부회장도 “사장단협의회에서는 그룹 내 공통적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거나 각사 세부적인 경영보다는 공동 관심사라든지 그런 논의사항을 다루게 될 것”이라며 “이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 각사별로 전문경영인에 의해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래 삼성그룹 계열사의 경영진은 전문경영인이지만 그룹의 총괄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 이 회장이나 그룹의 전략기획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동안 각사의 CEO나 임원들이 전문경영인으로 비쳐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사장단협의회가 실질적으로 계열사 간 중복투자, 신규사업 진출 교통정리 등 오너의 판단에 의존해왔던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과연 정리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50년간 이어져왔던 전략기획실의 해체는 장기적으로는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전략타워 부재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이재용 전무가 그룹경영의 변방으로 나가고 그와 호흡을 맞출 것으로 예상됐던 김인주 사장마저 퇴진함에 따라 불안정한 경영체제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경영 전반에 걸쳐 리더십을 발휘했던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전략기획실도 해체됐기 때문에 그룹경영의 구심점이 상실된 느낌”이라며 “한시적일지라도 구성원들이 집단협의체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