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모를 추락‥투자자 망연자실주가 또 연중최저치‥객장엔 한파
「기자님, 저는 가진 것 없이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자녀 셋의 교육을 올해 모두 마쳤습니다. 남편은 3년 전에 정년으로 공직을 퇴직했습니다.
애들 결혼도 닥쳐오고 집도 좀 늘려볼 요량으로 지난 98년 12월 남편의 퇴직금 1억5,000만원을 몽땅 털어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원금은 차츰차츰 줄어들어 지금은 1,500만원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기자님, 이같이 어려운 저의 처지를 헤아려 제발 회생할 수 있는 답을 부탁합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조모씨는 22일 서울경제신문에 이같이 읍소하며 폭락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절박한 편지를 보내왔다.
연일 계속되는 주가의 대폭락으로 전국의 투자자들이 신경쇄약에 걸려 있다. 고유가로 뛰는 물가와 곤두박질치는 주가 사이에서 서민들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고 있다. 18일 블랙 먼데이에 이어 22일 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이 다시 연중 최저치로 곤두박질치자 객장을 찾은 투자자들은 하소연할 곳도 찾지 못한 채 천장만 바라보며 멍한 표정들이었다.
투자자들의 얼굴은 수심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에도 하소연이 빗발치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삼성증권 객장은 멍하니 시세판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과 항의하는 투자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는 직원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 조용한 모습이었다.
객장에 앉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던 신형근씨(63·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올 초 퇴직금 7,000만원을 주식투자에 넣었는데 오늘 투자금이 1,00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며 『벤처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들의 주식투자를 권했던 정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주가가 또다시 폭락했다는 말을 듣고 출근하자마자 객장으로 달려왔다는 회사원 김성훈씨(35·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기아가 대우로 바뀌었을 뿐 IMF경제위기 상황과 어쩌면 이렇게 비슷하냐』며 『정치권과 정부는 경제가 요동치는 이 마당에 도대체 뭘하고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승민씨(37·경기도 부천시)는 『지난주 대우차 인수포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과감하게 모든 주식을 손절매해 그나마 다행』이라며 『정부는 남북 경협 등 바깥일에 신경쓰기 전에 다시 위기로 치닫고 있는 국내 경제부터 확실히 챙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창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오전 장이 열리기도 전부터 주식을 팔아달라는 주문이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며 『그러나 오늘은 손쓸 틈도 없이 주가가 미끄러지자 대부분 투자자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전했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에도 투자자들의 한숨과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대박99」라는 ID의 투자자는 『얼마전만 해도 TV를 켜면 경제를 살렸다고 자화자찬하고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하던 정권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스콜피온」이라는 ID의 한 네티즌은 『지금 코스닥은 IMF가 왔다. 거래소도 머잖아 깡통찬 사람들로 줄을 설 것』이라며 『국민들이 모두 주식에서 손을 떼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최석영기자SYCHOI@SED.CO.KR
입력시간 2000/09/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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