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勞使관계 로드맵의 사회학

박시룡 <논설실장>

기업이나 국가에 흥망성쇠가 있듯이 경제사회적 현상에도 변화와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이해가 얽힌 사안인 경우 한번 설정된 관계가 무한정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예민한 균형은 끊임없이 위협받으며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해나간다. 인간사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해나가는지도 모른다. 가령 노사관계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까지 갈 것도 없이 지난 수십년 동안의 국내 노사관계에도 연대기적 변화는 목격된다. 노동·자본 공방속 불신 심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해는 아마도 지난 87년일 것이다. 86년 민주화선언을 기점으로 개발연대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노동의 대폭발’이 일어난 해이다. 마치 개발연대의 강요당한 침묵의 대가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노동의 에너지는 터진 뚝처럼 분출됐다. 정치적 민주화 요구에 편승해 노조의 ‘전투적 실리주의’가 확산되면서 고용보호와 단체교섭, 사회보장 등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크게 확충됐다. 아울러 노동단체는 단번에 기업과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고 가장 강력한 이해집단으로 부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에 한국 기업들이 고임금을 피해 중국 동남아 등지로 떠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자본이 노동에 밀리는 시기였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 주도의 ‘87년 체제’는 87년에 느닷없이 밀어닥친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외환위기는 한국경제를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노사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의 ‘97년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경쟁력 없는 한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거품을 빼는 구조조정이 시급했다. 외환위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수많은 부실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은 고용조정을 동반했다. 대량 해고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근로자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확충되지 못한 현실에서 해고의 가장 편리한 잣대는 연령이었다. 불만의 소지가 큰 능력과 경험 등의 잣대가 아닌 나이 기준으로 대량 해고가 이뤄진 것이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특징으로 획일주의가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의 강력한 저항과 반발이 있었지만 구제금융을 앞세운 국제기준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구조조정이 효율성을 위한 자본의 논리라면 97년 이후 10년 동안은 87년 체제에 대한 반작용의 기간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노총위원장이 국무위원 반열에 오른 노사정위원회가 탄생함으로써 노동단체의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개발연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정부가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87년 체제 10년 동안 노사관계의 주도자는 단연 노동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외환위기라는 특수상황에 의해 형성된 97년 체제 10년 동안은 대등한 노사관계 또는 노사자율의 시험기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정치성이 지배한 ‘87년 체제’도 획일주의에 의존한 ‘97년 체제’도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진 관계 정립은 시대적 요구 그동안 작용 반작용의 경험을 살려 선진 노사관계의 틀, 다시 말해 ‘2007년 체제’를 만들 때가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새 시대를 열자면서 노사 모두가 불만인 노사 관련 법과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경쟁력 조사에서 만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후진적 노사관계를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경제사회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마련된 로드맵은 2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후진적 제도를 외면하면서 선진국가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노사관계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참된 리더쉽과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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