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파문] 직장남성들 '입조심·몸조심'『그냥 편안하게 대하면 되는데 요즘에는 제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남자직원들이 겸손해졌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대하는 태도는 물론 말씨도 매우 공손해졌습니다.』
벤처기업인 A텍의 김미경(25·여)씨.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한 농담을 건네던 동료나 상사직원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직장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추행 소식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요즘 직장분위기가 이처럼 「여존남비(女尊男卑)」로 바뀌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성희롱예방지침서까지 시달해 가뜩이나 꺾여 있는 남성들의 「기」를 더욱 꺾어놓고 있다.
S전자 김모(28) 대리는 『최근 일부 인사들이 성추행 파문에 휩싸여 한순간에 「몰락」하는 현실을 본 남성들이 입조심과 손조심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며 『남자직원들은 여직원을 잘 받들어 모셔야 출세한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만이 아니다. 술집의 분위기도 확 바뀌고 있다. 남성들은 종전에 「한 잔 걸치면」 여주인이나 여종업원들에게 야한 농담을 건네거나 실수하는 척하며 신체의 일부를 만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태도가 확 달라졌다.
서울 삼성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모(42)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종업원을 희롱해 문제를 일으키는 술꾼들 때문에 실랑이를 자주 했으나 요즘에는 그런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종업원 김모(22)씨도 같은 대답이다.
이처럼 여성들의 「성」에 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지난해 7월 발효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성들의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그동안 「성」을 폐쇄적으로 생각했던 사고방식이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최영애·崔永愛)는 30일 지난 1년동안 직장 내 성폭력·성추행 상담 접수건수가 모두 586건으로 전년도의 340건에 비해 무려 72.4%가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성희롱 유형은 손이나 가슴·허벅지·엉덩이를 만지거나 입맞춤·껴안기 등 신체접촉이 167건(46.5%)으로 가장 많았고 음담패설이나 성행위 묘사 등 언어 성폭력이 136건(37.9%)으로 뒤를 이었다.
崔소장은 『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사무관리직이 가장 많고 공무원·학원원장·전문직·프로듀서·음반사 사장 등 고학력층인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직장 상사 등이 자신도 모르게 성추행을 자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영일기자HANUL@SED.CO.KR
입력시간 2000/05/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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