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로 늘어난 아파트 집단대출 소송전이 연체대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 시세 하락이 집단대출 소송을 낳고 긴 소송에서 패하며 불어난 연체가 빚폭탄이 돼 돌아온 것이다.
실제 많은 대출자가 패소 뒤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건설사와 은행에도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집단대출 연체폭탄…건설사ㆍ은행ㆍ대출자 타격=집단대출은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지급해야 하는 중도금과 잔금ㆍ이주비 등을 단체로 빌리는 것이다. 1인당 평균 대출금은 1억5,000만~2억원으로 개인가계대출치고는 규모가 크다.
집값이 오를 때는 우대금리로 돈을 빌려 집을 사려는 분양자와 영업기반을 늘리려는 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02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2011년 말부터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지고 건설사의 주장과 달리 기반시설이 열악한 수도권 외곽 신도시를 중심으로 분양자의 연체가 속출했다. 분양계약 해지와 대출금 상환을 거부한 채 집단소송을 벌이는 것이다.
금감원 집계 결과 4월 말 현재 집단대출 연체율은 1.88%로 지난해 말의 1.51%에 비해 0.37%포인트 급등했다. 집단대출의 질을 나타내는 부실채권비율도 3월 말 현재 1.39%로 지난해 말의 1.28%보다 0.11%포인트 올랐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34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서울 25조7,000억원, 인천 11조3,000억원, 부산 6조6,000억원 등의 순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집단대출 연체는 입주시점에 발생하는데 분양가보다 가격이 하락한 경기도 파주ㆍ김포ㆍ일산ㆍ용인, 인천 영종도 등 수도권 외곽의 아파트 단지에서 연체가 높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장기적으로는 집단대출 연체 증가가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주택금융공사나 시공사가 보증하기 때문에 분양자가 연체해도 보전해주므로 은행으로서는 충당금 부담도 작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계속 악화해 보증을 선 시행·시공사들이 부실로 내몰릴 경우가 문제다. 업계의 관계자는 "평판이 좋은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는 분양자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지만 지금 분쟁이 진행 중인 사업장은 대부분 이미 부실화됐거나 자금여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기획 변호사 농간에 소송…승소율 0%=가장 큰 문제는 집단대출을 연체한 채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분양자다. 4월 말 현재 집단대출과 관련해 1만3,000명이 1조6,000억원을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분쟁사업장 수도 4월 말 현재 64개로 지난해 7월의 56개에 비해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건설사가 허위 과장 광고를 했으므로 분양계약이 무효이며 따라서 중도금 등의 대출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판사는 거의 없다. 그동안 분양자가 승소한 경우가 한 건 있었지만 이는 아파트 자체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이어서 여타 분쟁과 성격이 다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기획 변호사'가 분양자를 부추겨 소송을 진행하지만 법리적으로 분양자가 이길 확률은 0%에 가깝다"면서 "소송을 하는 동안 대출금을 연체하기 때문에 소송에서 패하면 은행은 3개월 이상 연체자로 보고 법원에 채무불이행자 신청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는 분양자는 건설사의 약속에 속지 말라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중도금대출 이자후불제 ▦계약금 환불 보장제 ▦프리미엄 보장제 등을 건설사가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으면 책임은 모두 대출자에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분쟁이나 소송을 이유로 대출이자를 내지 않으면 은행은 연체이자 및 채권추심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앞으로 중도금대출시 은행이 이 같은 사실을 상품설명서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또한 일부 시중은행은 집단대출 소송 중인 연체자 가운데 일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취하하면 소송기간의 연체이자를 정상이자로 감면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