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한 사람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빚을 지고 있고 가구당 3,000만원 가량의 부채가 있다는 사실은 살아날 줄 모르는 경기침체의 원인이자 결과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2003년 가계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총 447조5,675억원으로 나타났다.
물론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가계부채는 지난해에 전년 대비 증가율이 1.9%에 그쳐 증가세가 둔화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가계대출 부분과 달리 판매신용(외상구입) 부분은 경기침체와 카드사 신용한도 축소 등의 영향을 받아 1년 사이에 21조3,113억원이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2ㆍ4분기까지 가계부채 총액이 소폭이지만 감소하다가 하반기 이후 다시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방심할 수 없는 상태다. 또한 지난해 판매신용 감소액이 지난 98년의 8조4,000억원에 비해 2.5배나 돼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하게 가계가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2000년 이후 3년 동안 가구당 부채가 1,827만원에서 2,926만원으로 약 1,100만원이나 늘어난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전혀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최근호에서 가계부채가 국민총생산(GNP)의 75%, 가계수입의 117%에 이르렀다며 한국경제의 제2 위기론을 펴고 있다. 6년 전 외환위기의 진원지가 기업이었다면 이제 가계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가 아시아 전체를 휩쓰는 분위기였던 점과는 달리 내수 및 투자부진 등에 따른 우리나라의 경기침체는 한국만의 위기라는 게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욱이 최근 원자재 파동과 물가상승 추세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어서 서민 가계를 압박할 소지가 더욱 높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금융기관에 대해 이미 이루어진 가계대출을 현실로 인정하고 경쟁적인 회수를 자제해주도록 요청한 것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지난해 가계부채 가운데 신용판매는 줄어들었으나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의 증가액은 여전히 높아 3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투기 열풍이 잠복 양상을 띄고 있는 만큼 올해부터 가계대출 증가세도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액수가 많은 가계부채는 370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문제와 함께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복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