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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거래 주체인 기업들의 답답함은 풀리지 않고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여전히 '깜깜이' 상태이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들이 배출권을 거래할 때 알아야 할 기본정보가 여전히 부족하고 과세 및 회계기준 등도 아직까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행 초기 혼선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내년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개별 할당량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제도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될 턱이 없다. 배출권거래제의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28일 할당결정심의위원회를 열어 기업별 배출권 할당량을 결정해 업체별로 통보할 예정이지만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상황이다. 할당량에 불만이 있으면 30일 안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지만 이미 업종별 쿼터가 정해진 터라 동일 업종 내에서는 제로섬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개별 할당량을 두고 형평성 시비를 비롯한 제2차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뜨거운 감자, 배출권거래제…이중삼중 부담되나=배출권거래제는 당장은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2012년에 관련법과 시행령까지 마련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 의무참여해야 하는 기업만도 526개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은 대부분 포함되며 앞으로 대상 기업은 계속 늘어나게 된다.
환경부는 9월에 업종별 할당 계획을 발표했다. 1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거래제 적용대상 기업에 할당되는 총량은 16억8,700만톤이다. 이 중 15억9,800만톤이 제도 시행 전에 무상 할당되고 8,900만톤은 시장조성 등을 위해 정부가 예비분으로 남겨놓았다. 전문가와 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산업계가 추정한 예상 배출량과 2억만톤 이상 차이가 나는 등 격차가 여전히 크다. 업계에서 할당계획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기둔화로 내년 경영이 어려운 기업들의 부담이 이중삼중으로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행 D-35…과세 문제 등 아직도 협의 중=더구나 제도 시행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중요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등 관계부처는 1월에 수립한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의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논란이 예상되는 업체별 배출권 할당량 문제를 제쳐놓고라도 기업들에 민감한 과세·회계기준도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유럽연합(EU) 등 제도를 먼저 시행한 국가를 선례로 과세 기준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마다 기준이 다른 만큼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과세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유럽연합(EU) 등 총 30여개 국가에서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는 가운데 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만 비과세이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세하고 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기업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배출권은 100% 무상 할당되는 만큼 이에 대한 취득세는 물지 않아도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거래에 따른 법인세·부가세의 경우 방침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부가세는 부가세법이나 조세특례법을 개정해 면세나 영(0)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유예할지, 영구 유예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배출권을 기업의 자산으로 봐야 할지, 재고 등 부채로 봐야 할지에 대한 회계기준 역시 정해진 것이 없다.
◇수요·공급 불일치…시장조성 및 유동성 공급 방안도 의문=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한편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초기에는 거래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주장대로 배출권이 턱없이 부족하면 팔려는 업체는 없고 사려는 업체만 줄을 서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가 시장을 조성하거나 초기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제도가 미흡하고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태선 FN가이드 상무(글로벌탄소연구소장)는 "시장이 만들어지면 매수·매도자가 거래를 통해 시장가격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초기에는 눈치 보기를 하느라 거래가 상당 기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가 정한 산업은행 등 4개 시장 조성자들도 실제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기준가격으로 정한 톤당 1만원도 업계에서 추산하는 가격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생각한 기준가격과 실제 거래가격 간 괴리가 클 경우 차익거래 등 시장을 왜곡시키는 투기거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시장조성을 위해 예비분으로 남겨놓은 배출권도 시장가격을 조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김 상무는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시장조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풍부한 유동성 공급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배출권거래제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