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40년 묶인 알짜땅' 개발 길 열린다] 지역특성 따라 10~15층 허용… 주민 공동 대규모 사업도 가능

노후건물·나대지 방치 300개 자투리땅 등
지구단위 계획 세워 체계적 개발 유도 계획
지역·유형별 세부기준 이번주 자치구 전달


아파트지구로 묶여 개발이 제한돼왔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분당선 한티역 인근 주택가. 낡은 저층 상가주택들이 뒷편의 ''역삼래미안'' 등 고층 아파트의 경관과 대비된다. /신희철기자

지난주 말 방문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766-25 일대.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 7·8번 출구 바로 앞인 이 일대에는 신발 가게, 택시 차고지, 기사식당, 청과물 점포 등이 들어선 낡은 소규모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 '역삼 래미안' '역삼 아이파크' '도곡 렉슬' 등 강남권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층의 새 아파트가 들어선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으로 강남 노른자위에 위치한 초역세권치고는 초라한 풍경이다. 이 지역 A공인 관계자는 "역세권인데다 대로변에 접해 있어 상가나 빌딩이 새로 들어서면 수익성이 뛰어날 텐데도 수십년째 방치돼 있어 지역 주민이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항상 개발을 기대해온 지역"이라고 말했다.

땅값만 3.3㎡당 7,000만원을 호가하는 이 지역은 청담·도곡 아파트지구의 '개발 잔여지'다. 더 이상 아파트를 짓기에는 공간이 협소해 남겨진 자투리 부지들이지만 '아파트지구'로 묶인 탓에 저층의 점포주택만 지을 수 있어 오랜 세월 개발이 제한돼왔다.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09년 서울시 조례 개정으로 건축물 연면적 50% 범위 내에서 근린생활시설을 지을 수 있게 허용했지만 이 역시 5층 이하로 제한적이어서 실제 개발로는 거의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강남구가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통해 높이 40m 이하(10~15층)의 상업용 건물 신축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시가 강남구의 계획을 보류하면서 개발이 무산되기도 했다.

◇40년 묵은 아파트지구…맞춤형 개발허용=서울시가 '아파트지구 관리방안'을 마련한 것은 이처럼 지역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는 땅들을 여건에 맞춰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이미 아파트지구라는 용어가 지난 2003년 법령에서 삭제된 만큼 비주택용지까지 단순히 아파트지구로 묶어둔 기존 방안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지구 내 남은 땅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며 "지난해 4월부터 18개 아파트지구에 대한 전체 조사를 벌여 이번에 구체적인 관리기준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아파트지구란 1976년 개정된 도시계획법 시행령에 따라 처음 도입된 제도로 아파트의 집단적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의 경우 반포·압구정 등 총 18개 지구, 1,126만7,000㎡가 아파트지구로 지정돼 있으며 아파트지구 내에서는 주택 이외의 건물 신축이 제한돼 있다. 이후 아파트 위주의 주택 보급률을 급격히 높여야 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2003년 국토계획법 시행령상에서 아파트지구 제도를 폐지했지만 주변 지역은 여전히 규제에 묶여 방치된 상태다. 아파트지구라는 용어 자체는 사라졌지만 도시계획법에 의해 지정된 아파트지구 개발에 관해서는 종전 규정에 따른다는 경과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단위계획 세워 체계적 개발 유도=서울시가 마련한 비주택용지에 대한 관리방안 원칙은 기존에 아파트부지로 묶여 있던 용지들을 주민제안과 자치구 및 서울시 검토를 통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주민제안 및 공람, 설명회, 의견청취 등 주민 참여를 기본 전제로 삼아 민원 해소 및 지역개발 다양화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구별·유형별로 보다 구체적인 세부기준을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이번주 중 각 자치구에 전달할 방침이다.

아파트지구 내에서 실제로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은 땅은 모두 373만㎡다. 이중 이번 관리방안 마련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개발잔여지'다. 소규모 노후 건물이 들어서 있거나 아예 나대지 상태로 방치된 땅들이다. 300개 필지, 29만2,674㎡가 여기에 해당된다. 시는 개발잔여지에 대해 역세권 등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해 중·고층의 상가나 업무시설을 허용해줄 방침이다. 신축 건물의 높이가 5층 이하로 제한돼왔지만 타당성을 인정 받을 경우 10~15층가량의 고층건물도 지을 수 있게 된다. 필지별 단독 개발이 아니라 주민 공동개발 또는 시행사를 통한 대규모 개발사업도 가능해진다.

최근 서울시가 주민 스스로 지구단위계획의 세부지침을 결정하는 '주민주도형 개발사업'도 시행하기로 한 만큼 토지용도변경에 따른 '종 상향'의 가능성도 한결 높아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 상향은 매우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쉽지 않다"면서도 "지역 특성을 감안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심시설용지의 경우 자체 지구단위계획 수립 이외에 주변 지구단위계획과 연계된 개발이 허용된다. 대표적으로 강남구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압구정지구에 묶여 있어 층수가 5층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미 마련돼 있는 압구정로지구단위계획에 포함시켜 층수조정이 가능해진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와 분리돼 있는 주차장 부지의 개발도 가능해졌다.

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용지 중 실제로 해당 용도로 개발하지 않은 땅 역시 교육청 등 관련 기관의 수요 조사를 거친 후 도시계획시설 관리기준에 따라 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반시설용지에서 제외되면 개발잔여지와 마찬가지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개발방식을 정할 수 있다. 출생률 저하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학교와 공원용지 수요가 대폭 줄어든 만큼 기반시설 폐지를 결정하게 될 곳도 상당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파트지구=1976년 1월 아파트 위주의 주택보급률 향상을 위해 개정된 도시계획법 시행령에 따라 처음 도입된 제도다. 아파트의 집단적 건설이 필요할 때 도시계획으로 결정되는 용도지구의 하나로 현재 서울시내 18곳이 지정돼 있다. 대규모 주택공급에는 기여했지만 지구 내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03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주택법으로 개정하면서 부칙에서 아파트지구개발사업을 폐지하고 국토계획법 시행령상의 아파트지구도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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