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 바꿔야 양극화 해소 가능"



대기업 근로자 기득권만 누리려 할뿐 변화 기미 없어
정규직 고용 유연성 높이고 비정규직은 보호·지원을

일·가정 양립 가능하려면 장시간 근로체계 달라져야
통상임금 대법 판결이후 노사정위서 세부 논의할 것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에 이중구조가 형성되면서 양극화 등 사회 문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노동정책도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10월2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김대환(63ㆍ사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를 꼽았다. 이중구조화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과잉보호를 받는 노조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계층으로 노동시장이 나눠져 있는 것을 말한다. 김 위원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는 이중구조가 형성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며 "이런 구조를 놔두고 획일적인 정책을 펴면 오히려 문제가 심해진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그 해법으로 차별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대기업과 정규직, 공공 부문 노동시장은 지금보다 임금이나 근로시간, 고용형태 등이 보다 유연해져야 하고 비정규직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상당히 달라졌지만 대기업의 조직화된 근로자들은 기득권만 누리려고 할 뿐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대기업 노조의 노동운동도 지향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본위원회 위원 수를 11명에서 25명으로 확대했다. 기존에는 근로자 측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노조 대표만 참석했었지만 앞으로는 청년과 비정규직 대표 2명과 중소ㆍ중견기업 대표 2명이 추가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김 위원장의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일ㆍ가정 양립이 가능하려면 일상생활이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근로체계가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며 "남성 가장이 장시간 근로를 통해 가계를 꾸려가는 틀을 이제는 깰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형태인 남성 가장의 장시간 근로는 여성에게 가사와 양육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기고 가정 내에서는 가장의 역할이 줄어들어 자녀와의 대화 단절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 고학력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활용하지 못하므로 효율성도 떨어진다. 김 위원장은 "고용률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를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장시간 근로체제의 개선과 육아ㆍ양육 지원, 양질의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산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변화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와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고용에 따른 비용 부담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처럼 어긋나는 이해관계는 노사 간의 합의와 양보, 정부의 지원을 통해 풀어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기업은 단축된 근로시간만큼 비례해 임금을 줄이는 원칙을 고수하기보다는 관대한 조건으로 임금을 어느 정도 보전해주고 대신 근로자는 생산성 향상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며 "정부는 세제나 행정 지원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여성의 사회활동과 고용률 확대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전일제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가진 부인이 합쳐진 가계 소득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효과도 없어지고 여성 고용도 늘리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노사정위는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ㆍ가정 양립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내년 8월까지 제도ㆍ관행 개선방안을 도출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산업현장의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도 노사정위 차원에서 다뤄보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월급이나 주급인데 연장근로와 야간, 휴일근로 때 지급하는 수당의 기준이 된다. 2~3개월마다 지급되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노사가 소송전을 벌이며 맞서고 있다. 그는 "노동계가 통상임금 다루는 것을 피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하고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있는 만큼 판결 이후에는 노사가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소송은 구성 요건이 제각각이어서 이를 일반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대법원 판결 이후 필요성이 있을 경우 노사정이 안건을 잡아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임금 논의에 앞서 노사정위는 현재 전문가가 참여한 고용노동부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가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내놓으면 의제별 위원회인 임금ㆍ근로시간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시키는 대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통상임금 논란도 결국 잘못된 임금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체계 개편을 함께 조율하고 정부가 참여해 개선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위에서 임금과 근로시간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임금이나 근로시간을 별개로 다룰 경우 각자의 입장만 따지다 조율에 실패할 수 있지만 둘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는 주고 하나는 받는 식의 협상을 통해 의견 접근이 쉬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새 정부에서는 노사 관련 정책을 추진할 때 반드시 노사정 간 논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 5년간 정부는 일방적으로 법안을 추진해왔지만 새 정부에서는 박 대통령도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노사정위에서 충분히 다룬 뒤에 정부로 넘겨 법안을 처리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유명무실했던 업종별위원회의 활성화에 대한 복안도 피력했다. 산업별 특성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업종별위는 지금까지는 정부와 산업계를 위주로 노조의 힘이 세지는 것을 우려해 위원회가 설립되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근로시간과 임금 관행 등 업종별 차이를 고려한 논의를 해야 현실성을 갖출 수 있다"며 업종별위 필요성을 제기한 뒤 "기업이 업종별위를 계기로 산업별노조 결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큰 걱정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산별노조의 결성은 현재 기업별 노조들이 구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문제로 정부가 제도를 만든다고 바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견해다. 그는 "업종별위를 통해 산업마다 독특한 노사관계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합리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어차피 의제는 노사정이 합의해 정하기 때문에 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사문화에서 고쳐야 할 점으로 우선 믿지 않고 보는 '전략적 불신'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대화에서 자기 주장은 일부인데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대화가 아니라고 해서 뛰쳐나가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낮다 보니 사회적 대화를 위한 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라고 우리 노사문화를 되짚었다.

특히 무조건 상대를 믿지 않은 상태로 협상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전략적 불신' 관행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으면서 대화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문제라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사정을 이해하고 함께 가자는 관점에서 대화를 지속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노사정이 함께 이런 분위기를 축적시키면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빠른 속도의 산업화와 짧은 시간 안에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나라가 가진 에너지가 충분한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화 분위기도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의 진보는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사회적으로는 합리화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며 "이제 우리의 과제는 사회적 대화를 바탕으로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합리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장선상에서 현재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노사정위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내다봤다. 그는 "억지로 민노총을 끌어들일 수 없다"며 "노사정위가 열심히 활동하면서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내는 여건을 갖춰간다면 민노총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e is…



▲ 1949년 경북 김천(금릉) ▲ 197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1977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 ▲ 1985년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 1978년~ 현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 1991~1992년 옥스퍼드대 초빙교수 ▲ 1993~1996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 2002~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 ▲ 2004~2006년 제21대 노동부 장관 ▲ 2006~2007년 한국고용정보원 이사장 ▲ 2013년 6월~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 김 위원장은
학자·장관 출신으로 이론·실무경험 풍부… "사회적 약자 보호" 소신



지난 27일 오전9시50분 대형 증권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로 2길. 평소 같으면 업무 집중시간이라 거리가 한산했겠지만 이날은 100여명이 넘는 경찰과 경호원들이 유진투자증권 빌딩을 둘러싸고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지나던 시민들은 낯선 상황에 의아한 듯 그들을 쳐다봤다.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전조등을 킨 승용차 대열이 건물 앞에 서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갑작스레 증권사 건물로 들어간 이유는 이곳 19층에 자리하고 있는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에서 열린 본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직접 노사정위를 찾은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방문한 뒤 10년 만이다. 박 대통령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기업인과 근로자, 노사단체가 타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며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를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 대통령이 단 한 차례도 노사정위에 정책자문을 구하지 않으면서 '식물기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만큼 노사정위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김대환 위원장이 서 있다.

2004~2006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그가 위원장에 임명된 6월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학자 출신들과 차관까지 지낸 인사들이 위원장을 맡아오며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안팎의 평가가 있었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간부와 정부부처 수장까지 지내며 폭넓은 이론ㆍ실무 경험을 쌓아온 김 위원장은 취임과 함께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먼저 비정규직 근로자와 중소기업 대표, 시민사회 단체 등을 노사정위원회 위원에 포함시키는 개편작업에 돌입했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도 담아내는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는 평소 철학이 반영됐다.

영국(옥스퍼드대 박사) 유학파 출신인 그는 감성보다는 이성을 좇고 정서적인 대화를 비생산적으로 보는 유럽식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그러나 위원장이 된 뒤 연일 노사정 고위관계자들과의 술자리를 찾아 다니며 스킨십에도 힘쓰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원활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한국식 정서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취임 100일을 눈앞에 둔 현재 노사정위는 의제ㆍ업종별 위원회들이 잇달아 출범(예정)했고 박 대통령까지 본위원회에 참석하는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들은 몰라보게 바빠졌다. 그러나 '식물기구'라는 오명에 마음 고생하던 이전보다는 훨씬 낫다는 표정이다.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온 뒤 일은 많아졌지만 조직에 힘이 실리는 것 같아 오히려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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