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바람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정책이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기업들도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법 개정이 지연됨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추진되는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지지부진할 뿐 아니라 법 개정을 믿고 금융자회사 지분매각을 보류하던 기업들에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상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4월 국회 정무위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회부됐으나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계류돼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은 이미 오래 전에 정부가 약속한 것으로 대기업들도 법 개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법 개정이 지나치게 지연되면서 정부를 믿고 금융계열사 지분매각을 보류해온 SK그룹의 경우 과징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월31일 지주회사 SK의 자회사인 SK네트웍스가 4년간의 유예기간이 만료됐음에도 SK증권을 계속 지배하는 것은 현행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주식처분 명령과 함께 과징금 50억8,500만원을 부과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13개 지주회사의 87개사에 유예기간이 적용되고 있다. 만약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가운데 올해 말까지 11개사, 내년 47개사, 2013년 29개사의 유예기간이 만료돼 과징금 등 각종 행위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한 신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활성화 정책도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증가율이 2008년 50%에서 지난해 21.5%까지 떨어졌고 주요 그룹 중 지난해 1월 이후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은 하나도 없는 상태다.
지주회사제도는 대기업 규제조항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한 후 정부가 내세운 대기업 정책의 근간이나 다름없다. 특히 대기업의 선단식 경영을 막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지주회사제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기업의 부당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