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청와대도 컨트롤 못하는 관피아 파워

권한·밥그릇 지키려 인사권까지 왜곡

#1.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1급 인사를 앞둔 지난해 3월 말 특허청은 유일한 1급인 차장 자리에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을 밀기로 하고 청와대에 1·2순위 후보를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사여서 예측이 어렵자 특허청은 후순위 후보에 산업부 출신보다 행시 기수가 한참 후배이고 경력도 뒤지는 본청 출신 국장을 끼워넣었다. 산업부 출신 후보가 쉽게 대통령의 낙점을 받을 수 있게 사전작업을 한 셈. 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허청 등 청(廳) 단위 기관이 상급부처에 휩쓸리지 않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게 내부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대통령의 깜짝인사에 특허청은 1급을 배출한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본인조차 기대하지 않던 젊은 국장이 승진, 간부 서열이 뒤죽박죽돼 울상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2. 비슷한 시기 산업부는 1급인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윤상직 장관이 사실상 내정한 A국장을 1순위 후보로 청와대에 추천했다. 산업부도 A국장이 가볍게 청와대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후순위 후보에 행시 기수나 경력이 뒤지는 B국장을 올렸다. 1급 후보 프로필을 꼼꼼히 보던 박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1순위 후보인 A국장의 경력에 무역 분야가 없어 퇴짜를 놓은 것. 하지만 이는 박 대통령이 막 취임해 무역위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일어난 실수로 산업부는 보고 있다. 실제 무역위는 수입 등 불공정 무역거래로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업무가 주된 일로 국내 산업에 정통한 A국장이 적임이기 때문이다. 산업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바로 보좌하기보다는 1급 승진이 좌절된 A국장을 주요 공공기관의 기관장으로 내보내 배려하는 한편 뒤에서는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업무 폐해가 확인됐다"며 수근댔다.

두 사례는 '관피아(관료+마피아)'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고 대통령조차 속이며 바보로 만들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허청 사례는 대통령의 개혁적 인사원칙이 일견 관철된 것으로 보이지만 공무원들은 최근까지도 대통령이 관료의 말을 듣지 않아 정부조직이 흔들린 대표적 예로 꼽고 있다. 산업부도 당시 1급 인사의 우여곡절을 대통령이 관료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때 생기는 폐해로 지적한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산업부나 특허청 사례가 회자되면서 한동안 청와대가 각 부처에서 올린 공직 후보자 추천 순위를 존중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새 정권이 선출되면 관료집단은 인수위원회 기간에는 정부조직 개편과 조각 때문에 바짝 긴장하며 눈치를 보지만 새 정부가 일단 출범하고 한 차례 인사폭풍이 지나가면 권력 접수에 나선다. 정부가 운영되는 밑바닥 원리를 관료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대통령도 공무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선 후보 때는 관료를 비판하다가 대통령이 되면 6개월 만에 관료에게 넘어간다"고 말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만 해도 '늘공(늘 공무원)'이 6개월 만에 '우공(우연히 공무원)'을 완전히 제치고 권부를 장악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8월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 개편에서 민간에서 온 언론인과 교수 출신 수석이 빠지자 외무 관료 출신이 정무수석에, 복지부 출신이 고용복지수석에 임명됐다. 청와대의 핵심 중 핵심인 2실장 9수석을 검사와 군인까지 포함하면 8명의 관피아 출신이 맡고 있는 것이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공무원 사회에 정통한 민간 전문가들이 많이 있는 만큼 대통령이 관료에 휘둘리지 않고 인재를 중용해 쓸 수 있는 환경인지 충분히 점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한영일 민병권 이철균 손철 이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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