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불법 로비 의혹 폭로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 진위는 검찰과 특검의 수사로 밝혀질 것이고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처벌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로비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해결책의 하나로 로비공개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삼성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기업의 이익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러니 정부 정책이 기업에 도움이 되도록, 적어도 손해는 입히지 못하도록 로비를 한다.
기업이 로비를 멈출까. 이번 폭로가 강력한 처벌로 이어진다 해도 기업의 이익 추구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로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거나 직접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하지만 여러 법에 의해 제3자를 통한 로비는 금지되는 반면 회사나 단체의 구성원이 직접 하는 로비는 뇌물 수수 등의 불법 행위가 없는 한 적법할 뿐 아니라 공개 의무도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삼성의 경우처럼 내부자 폭로 등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로비의 실상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소속 임직원이 직접 로비를 했다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비와 관련한 사법 처리 기준은 금품 수수와 대가성 여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로비공개법을 만들자는 것은 금품 수수나 대가성 여부와는 별개로 로비활동을 신고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금전거래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영향력 행사에 대한 보상을 사안별로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국정감사기간 중에 ‘통신회사들이 국회의원들의 질의서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부의 답변서 준비에까지 많은 자료를 제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업의 이런 행위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일반화된 전형적인 로비이다. 국정감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견해를 전달한 것이다. 문제는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기업의 이런 활동을 국민이 몰랐을 거라는 점이다. 이런 내용들을 다 공개하자는 것이다.
외환은행 로비 의혹으로 유명해진 미국의 ‘론스타’는 “지난 2005년 한국 정부와의 투자자 세금 관계 및 제안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아래서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미국의 하원, 상원,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재무부 등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도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다. 2005년 말부터 ‘스크라이브 스트래티지스 어드바이저스’라는 로비회사를 고용해 대의회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국무부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 적용 검토나 의회의 각종 지지서한 발표에 역할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한미 FTA 협상 지원을 위해서는 ‘샌들러 트래비스 로젠버그’라는 로비스트 그룹과 계약했다.
일본 정부는 미 하원에서 종군위안부 결의안 문제가 논의되자 이를 막기 위해 거물급 로비스트와 월 6만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런 내용이 어떻게 알려질까. 미국에서는 로비공개법에 따라 6개월마다 로비활동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공개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필자가 방문했던 미국의 로비 전문회사(미국은 제3자 로비가 합법이다)는 그들의 고객리스트를 필자에게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한국에서는 공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로비의 실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뒷북일 때가 많다. 이는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부패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로비가 공개되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보다 투명해질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그만큼 신장될 것이고 검은 거래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참고로 국제투명성기구(TI)가 올 9월에 발표한 2007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1점으로 180개국 중 43위였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깨끗하다고 평가받는 수준인 7점대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평균인 7.18에도 한참 떨어진다. 한국은 OECD 30개국 중 25위이고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에서도 8위에 머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