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도발] 北 대남도발 사례


갈수록 대담한 교전 형태로 발전 북한의 대남도발은 과거에는 테러형태로 소규모로 이뤄졌던데 비해 갈수록 대범한 방식의 영해 침범, 교전 등으로 확전되는 추세다. 1960년에는 무장 게릴라 침투, 1970년대는 소규모 무장간첩 침투, 1980년대는 국제테러 등이 북한 도발의 주를 이뤘다. 이후 1990년대는 한반도 내부의 군사적 침투 및 도발 등으로 변해왔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잠수함침투는 지난 1996년에 이어 1998년 6월 22일 속초 동방 11.5마일 해상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이 발견됐다. 같은 해 12월 18일에는 여수시 앞바다에서 북한 반잠수정 1척이 침투해 격침시켰다. 이후에는 북한군의 공개적인 도발로 인한 교전이 서해상에서 빈번했다. 지난 1999년 6월 제1 연평해전은 남북한 해군이 충돌한 첫 번째 교전이다. 당시 14분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북한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중형 경비정 3척과 소형 경비정 2척이 파손됐다. 북측의 사상자도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해군의 피해는 함정 2척이 약간 손상되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러나 2002년 6월 벌어진 제2 연평해전에서는 우리 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은 불과 20분간 이어전 교전에서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연평도 서쪽 12.6㎞ 해상에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은 방송으로 퇴각을 요구하는 남측 고속정 편대를 향해 갑자기 85㎜와 35㎜ 함포 사격을 가해왔고 이에 남측 고속정은 40㎜ 함포와 20㎜ 벌컨포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해군이 북한 경비정들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NLL을 침범을 한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도 제기됐었다. 또 2009년 11월 10일 벌어진 대청교전(서해교전)에서는 북한 해군 함선이 반파되는 피해를 입고 북상했고, 한국 해군은 함선 외부격벽의 파손을 입는 등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올해 천암함 사건이 일어나면서 우리 군은 북한의 공격으로 인한 최대 사상 피해를 입었다. 104명의 승조원 중 58명은 해경에 의해 구조됐지만 46명은 희생됐으며 수색작업을 펼쳤던 해군특수전여단(UDT) 소속 한주호 준위도 결국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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