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촌의 비쳐진 인간 자화상

'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들녘 펴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에서 탄탄한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고 있는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두 번째 소설. 그녀의 소설은 광적일 만큼 지독한 사랑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이뤄져 있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그녀를 노벨상 수상자로 올려놓았던 ‘재즈’와 퓰리처상 수상작인 ‘빌러비드’가 사랑의 테마를 골간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첫번째 소설인 ‘가장 푸른 눈’과 이책은 흑인들의 삶을 통해 바라 본 인간의 정체성 탐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소재는 역시 사랑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미국 오하이오의 메달리온 읍내 변두리의 흑인여성 3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의 배경은 이른바 ‘바닥촌’으로 이름 붙여진 마을. 이 흑인 마을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지만 바닥촌이라 불린다. 백인 농부가 흑인 노예에게 힘든 일을 잘해내면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 흑인들의 거주지로 바뀐 곳이다. 소설은 이 바닥촌에서 살아가는 피스 가문의 3대 이야기를 담았다. 피스 가의 1대 여인 에바는 자신을 떠나간 보이보이를 증오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과 친구나 연인관계를 맺는다. 에바의 딸 한나는 리커스와 사별한 뒤 이웃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데, 그것은 경제적 이유나 보호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성과의 접촉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한나의 딸 술라는 성 관계란 빈번할수록 좋은 즐거운 유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피스 가의 여인들은 남성과의 관계를 오랜 세월 사회 역학구도가 과중하게 부과해온 보호와 억압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의 원초적 동반 관계로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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