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철권통치가 무너졌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전쟁 후유증의 치유가 쉽지 않겠지만 반전에 앞장섰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조차도 현실적 이익 챙기기에 나섰다. 이라크전쟁은 이미 새 이라크 건설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일원으로 분류됐던 북한의 핵 문제가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 바그다드 함락 직전까지만 해도 이라크전쟁을 `전형적인 국가테러`로 비난하던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전제로 다자회담 수용을 시사했다. 미국의 현실적 힘을 보여준 `바그다드 효과`의 영향일 수 있으나, 그 동안 견지해온 북 미 양자대화 입장으로부터의 변화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 대두 이후 북 미간 공방은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와 영변의 핵시설 재가동으로까지 진전된 상태다. 아직까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가 생산하려는 조짐은 없지만, 북핵 문제는 대북정책에서 한 미의 최대 현안이다. 양국은 지난 몇 달 동안 반미운동과 반한감정, 동맹의 변화필요성 등에 대한 논란으로 다소의 갈등을 겪었으나,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북미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온 상황에서, 문제는 이 같은 원칙을 어떻게 구체화하는 냐이다.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위기조성을 위해 있지도 않은 핵문제를 만들었고 처음부터 핵문제는 북 미간에 제기되었기 때문에 북 미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다자회담 수용을 시사함으로써 대화 재개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북한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이 해결방안이며, 그러면 미국의 안보우려도 해소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북핵 문제에 한국이 개입할 여지는 없으며, 이라크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표명 이후 예정되었던 남북당국간 회담은 물론 경의선, 동해선 철도 연결식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다. 또한 한국의 이라크전쟁 파병결정을 강력하게 비난했고, 미국에 대항하여 이른바 `민족공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이 `선군정치`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던 날 켈리 미 국무차관보는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며 북핵 문제를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부시 대통령도 대화의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은 외교적 수단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행위 변화가 먼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다자대화 틀이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력의 수단임을 굳이 감추지 않았었다. 이라크전쟁 승리가 미국 지도부에게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의 효용성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할 지도 모른다. 북핵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북미간 입장 차이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강한 불신이다. 북한은 미국의 정책을 `정권교체` 등 북한체제를 `압살`하려는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국제사회 이탈세력으로 보고, 지도부에 대해 회의적이다. 양자 사이에서 한국은 북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심화되고 남북관계가 교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다자대화를 수용하고 그 틀 속에서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라크전쟁의 빠른 종결과 한, 미, 중의 외교적 노력 등이 북한으로 하여금 다자대화 수용의 방향으로 선회토록 했다. 미국의 막강한 힘을 보고 북한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다자대화 틀을 자국에 대한 국제적 압박으로 보는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4자회담 본회담에 참여하는 데에 1년 반 이상의 시일이 소요되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의 시작은 4자회담 성사보다는 짧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와 체제보장을 위한 담보를 먼저 확인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이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까지는 지루한 공방의 과정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문제를 위기의 극단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더 이상 갖지 않도록 예방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단호함을 북한측에 인식시킬 때,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박영호(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