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령층의 노후자금이 금융위기 이후 상당부분 소진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3일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노후 대비 부족한 고령층 소비할 여력이 없다’라는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이후 고령층의 소비성향(가처분소득 중 지출의 비중)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세대 간 소비성향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학적으로 청장년층은 소비가 적고 고령층은 소비가 많은 집단이다. 젊을 때 돈을 벌어 자산을 모으고, 늙어서는 이를 팔아 노후를 꾸려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2008년) 이후 한국의 60대와 70대는 각각 소비성향이 5.9%포인트, 6.8%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40~50대의 소비성향은 약 2%포인트씩 하락하는 데 그쳤고, 39세 이하는 1.6%포인트 올랐다.
이에 2000년대 초반 60세이상>50대>40대>39세이하 순이었던 소비성향은 지난해 40대>39세이하>60대이상>50대로 정반대가 됐다. 즉, 고령층일수록 소비를 갈수록 줄이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 연구원은 “2000년대 이후 경제ㆍ사회적 환경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고령층은 미처 변화에 대비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그간 노후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예를 든 경제ㆍ사회적 변화는 1990년대 이후 빠르게 늘어난 자녀 교육비다.
고 연구위원은 “중ㆍ고교생을 자녀로 둔 40대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1990~2000년대 연 10% 이상씩 늘었다”며 “이 시기 교육비 지출이 빠르게 확대되며 현 60대는 소득이 가장 높은 40~50대에 노후를 위해 저축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고령층이 대응 못 한 또 다른 변화는 부동산 불패신화의 종언이다. 그간 끝 모르고 치솟던 집값을 보며 고령층은 노후자산 1순위로 부동산을 마련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주택시장 침체가 오며 노후자산을 까먹은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어렵다는 기대가 확산하며 고령층은 소비를 더욱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이후 소비에 필요한 자산이 더 많이 필요해진 점,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노후자산의 실질가치(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가치)가 절하된 점 역시 고령층의 소비성향을 떨어뜨렸다고 평가했다.
고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고령층의 낮은 소비성향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봤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상당기간 이어질 걸로 보이는 데다 부동산 역시 장기적으로 대세상승 기조는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고령층의 미래 삶을 훼손하지 않고 소비성향 높이려면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며 “고령층 근로 확대는 노후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공적연금, 노인복지 수요를 감소시켜 재정부담 절감ㆍ성장률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