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 신뢰잃은 유럽 금리인하

"안돼, 안돼, 안돼.돼."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신뢰를 잃었다. ECB는 어제 금리를 4.75%에서 4.5%로 내렸다.이번 금리인하는 시장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최근까지 각국 재무장관들과 국제금융기구(IMF)ㆍ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은 금리를 인하할 것을 충고했으나 ECB 금융위원회는 이를 거절했다. 이번주만 해도 독일연방은행의 에른스트 벨테케 총재는 유로통화권에 경기침체란 없을 것이며 평균물가를 올해의 목표치인 2% 이하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벨테케 총재는 물가조정으로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ECB의 정책방침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후로 유로권의 물가상승 압력은 다소 줄어들었고 통화증가율도 둔화했다. ECB의 수석경제학자인 오트마 이싱이 최근 말한 대로 추가 유가상승이나 유로가치 하락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미국경제의 급속한 하락은 유럽경제의 신인도와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의 수출은 타격을 받고 있으며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은 경제성장률이 올 2ㆍ4분기에 2.2%로 떨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ECB는 이 같은 새로운 지표에 대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바로 대응했다. 그러나 ECB의 이런 대응을 몇몇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나섰다. ECB의 대응이 "견실한 유로"를 바라는 기대심리와 현재 단기금리가 지난 20년간 평균 단기금리보다 낮다는 현실이 대치되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출범 때부터 ECB는 외부의 압력에 대해 불만스러운 듯이 보였다. ECB의 이 같은 태도는 시장에 혼란을 가져왔다. 일례로 금리가 내리자 유로가치가 지난 3주 동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ECB가 최근 월례보고서에서 밝힌 대로 "ECB의 정책이 경제성장을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을 시장에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별다른 위험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CB는 그러한 의사표시를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은행은 어제 0.25%포인트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은행의 이러한 움직임 역시 물가상승 압력을 억제하고 시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올해 세차례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영국은행은 침체된 세계경제 미래에 대해 ECB보다는 책임감이 있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 금리는 아직도 유로통화 지역보다 0.75%포인트 더 높은 상태다. 영국경제는 현재 성장잠재력이 정점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별다른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미국경제가 더욱 하락할 조짐을 보인다면 영국은행과 ECB 둘 다 금리를 재차 인하해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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